[오늘과 내일/허승호]물가당국 공정위, 관치전문 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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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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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경제학은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딱 두 가지만 제시하고 있다. 총공급을 늘리거나 총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이 둘 이외의 다른 방법을 쓰면 물가안정 효과는 거의 없는 반면에 부작용이 크다고 상세히 가르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을 어찌나 중요시하는지 “앵무새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말만 할 줄 알면 경제학자로 행세할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법치 무시, 시장 무시

기자가 물가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정위는 물가당국”이라고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라는 것을 이해 못하는 직원은 색출해 인사 조치하겠다”고까지 했다. 물가 관리를 위해 공정위 조직도 바꿨다.

기묘한 발언이다. 정말 공정위가 물가기관인가? 공정위의 설립목적과 권능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다. 법에 따르면 공정위가 할 일은 독과점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법은 71개 조문, 5만6000자 분량이지만 ‘물가’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가격상승이 몇몇 업체의 독과점 또는 담합에서 비롯됐다면 이를 시정하는 과정에서 가격안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면서 나타나는 부수적 효과이지 가격통제를 겨냥해 칼을 뽑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김 위원장은 어떤 근거로 스스로를 물가당국이라 칭하는가? 혹 법의 지배를 부인하는가?

나아가 공정위는 가격이 올랐거나, 오를 것 같은 94개 품목에 대한 직권조사에 이미 들어갔다. ‘인상요인이 있건 없건 조사받기 싫으면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얘기다. 1970년대 세무공무원이 중국음식점을 돌며 자장면 값을 점검하던 때가 있었다. “값을 올리려면 세무조사를 각오하라”는 메시지였다. 이런 ‘옛날식 물가관리’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시장원리를 왜곡한다. 게다가 얼마 가지도 못한다.

요즘 물가가 오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국제 원자재가격 앙등과 중국발 인플레이션 등 공급 측면에서의 비용 상승이다. 둘째, 수요 측면에서는 2008년 이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돈이 많이 풀렸다. 교과서의 원리 그대로다. 그렇다면 처방도 원인과 증세에 맞아야 한다. 저환율을 통한 수입물가 낮추기와 공급물량 확보, 그리고 통화 죄기다.

어처구니없기로는 금융위원회도 공정위에 못지않다. 금융위는 12조 원에 이르는 저축은행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시중은행들이 저축은행을 인수하도록 했다. 또 은행과 보험이 쌓아둔 예금보험기금으로 저축은행을 돕는 방안을 내놨다.

은행·보험권은 물론 “남의 부실을 내가 왜 떠맡느냐”며 저항했다. 그러나 ‘미스터 관치(官治)’라는 신임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팔 비틀기에 나서자 KB 우리 신한 하나 등 국내 4대 금융지주사가 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하겠다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옛날식 부실 해법’이다.

나라 위상에 어울리는 정책을

이들 금융지주사 및 은행의 주가는 즉각 폭락했다. 부실을 다른 기업에 안기면 당장은 구조조정과 공적자금 투입의 고통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멀쩡한 기업마저 부실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현재 은행권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이 42조 원이나 돼 남의 부실을 더 얹지 않아도 언제 스스로 부실화될지 위태로운 상태다.

당국자들이여, 제발 정책은 쉽고 간단한 원리와 원칙에 충실하라. 외환위기도 원칙은 도외시한 채 이런 기발한 편법, 신묘한 재주에 의존하다 만난 것 아닌가. 이미 선진국 문턱에 섰다. 경제정책에도 원칙을 되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권한다. “엄중한 직분을 맡으셨다. 겸허한 마음으로 경제교과서를 다시 한 번 펼쳐보시라.”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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