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위키리크스와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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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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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1일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정확히 몇 명인지 확인해 줄 수는 없지만 해외에서 활동해 온 고위급 북한 관료들이 최근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말했다. 미국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우리 정부는 불법 수집된 외국의 정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확인을 거부했지만 외교당국자 간의 비공식 대화 내용이 공개된 데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세계 각국의 미국 공관이 국무부와 주고받은 25만 건의 전문 가운데 일부를 공개하면서 세계 외교가가 충격에 빠졌다. 모두가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이탈리아의 프랑코 프라티니 외교장관은 이번 사태를 세계 외교가의 ‘9·11테러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세계 최고 정보망과 보안시스템을 갖춘 미국의 외교안보 문서가 한순간에, 그것도 통째로 유출돼 세계 각국의 외교 파트너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은 스웨덴의 체포영장에 근거해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를 성추행 혐의로 체포하라는 ‘적색경보’를 회원국에 내렸다. 오바마 행정부는 위키리크스가 미국 국익과 외교활동을 침해했다며 설립자인 어산지와 조직에 간첩법을 적용하는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미국 국무부는 정보의 추가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교 전문 데이터베이스와 군 내부전산망의 연계를 잠정 중단했다. 프랑스 정부도 전문 발송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외교안보문서가 디지털화하면서 비슷한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각국의 걱정이다.

▷어산지는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 인사들에게 미국이 서명한 국제규약을 어기고 유엔에서 스파이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사임해야 한다”고 거꾸로 큰소리를 쳤다. 이제 각국 외교관은 서로 만나 정보를 주고받으며 속내를 털어놓기 어렵게 됐다고 푸념하고 있다. 그럼에도 외교무대는 담소를 나누며 와인 잔을 부딪는 시간에도 상대국의 속내를 훔쳐가는 냉엄한 첩보전쟁이라는 현실을 위키리크스 사태는 새삼 보여준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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