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그룹, 건설 인수 뒷감당 만만찮다

  • 동아일보

채권단의 관리를 받던 현대건설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이 선정됐다.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그룹 컨소시엄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실사(實査) 및 본계약을 거쳐 내년 2월경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그룹 경영진의 무리한 대북(對北)사업과 이른바 ‘왕자의 난’ 등 경영실패에 따른 자금난으로 2001년 채권단에 넘어간 현대건설 경영권이 약 10년 만에 옛 대주주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라는 범(汎)현대가 두 그룹이 치열한 인수 경쟁을 벌이면서 과열 양상까지 보였다. 현대그룹은 핵심 평가 요소인 가격 부문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현대차그룹보다 4000억 원가량 많은 5조5100억 원의 입찰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3조5000억∼4조 원대보다 훨씬 높은 액수다.

현대그룹이 시공능력 기준 국내 1위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을 최종인수하면 포스코 KT 등 민영화된 공기업을 포함한 자산기준 재계서열은 현재 21위에서 14위로 껑충 뛴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어 그룹의 경영권 방어에도 도움이 된다. 그룹 측은 기존의 해운 증권 엘리베이터 대북사업에 건설업이 추가되면서 거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외부의 ‘재무적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대형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킨 데 따른 후유증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현대그룹의 자체 보유 현금은 약 1조5000억 원으로 현대건설 입찰액의 29%에 불과하다. 어제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가 나오자 현대그룹 계열사들과 현대건설의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그룹이 무너질 뻔한 위기까지 몰린 것과 같은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현대그룹은 각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그룹의 옛 영광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하며 고무된 분위기다. 현 회장은 현대건설 및 현대그룹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현실을 직시해 올해 수주 목표액 20조 원, 해외 건설 수주목표액 100억 달러인 현대건설을 세계 건설업계의 강자(强者)로 키워야 할 무거운 책무가 있다. 대주주의 잘못 때문에 채권단이나 정부에 손을 벌리는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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