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헌 필요성 있어도 가능성 더 살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여권 핵심 인사들을 만나 “내가 (대통령 직을 수행)해 보니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돼 있더라”면서 개헌을 적극 추진해줄 것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행정과 복지 같은 국내 문제는 다른 사람이 하고, 대통령은 외교 등 국제적 문제를 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올해 안에 개헌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과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연이어 언급했던 이 대통령이 개헌의 방향까지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너무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권력이 바뀌면 이전 정부의 성과가 평가절하 되기도 쉽다”는 말도 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 탄생한 현재의 헌법이 대통령의 권한과 임기, 단임제 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그동안 많이 제기됐다. 보다 구체성을 띤 이번 발언은 2년 반에 걸친 국정의 경험 끝에 나온 것이라 더 무게 있게 다가온다.

한나라당은 그제 ‘개헌특위 구성’과 민주당이 요구하는 ‘4대강 검증특위 구성’ 등을 맞바꾸자고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 개헌 논의는 원천적으로 ‘빅딜’ 대상이 될 수 없는 중대한 국가 사안인데도 한나라당은 부적절한 수단까지 동원하면서 개헌의 불씨를 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헌의 필요성과 성사 가능성은 별개다. 정치는 적절한 때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다. 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지금은 개헌의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경제 분야 등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 대처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다른 주요 현안들을 제쳐놓게 될 것이 분명한 개헌 논의를 이 시점에서 해보자는 게 옳은 판단인지 의문이다.

개헌은 정치권과 국민의 공감대가 마련돼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계파 간에 생각과 이해관계가 달라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쉽지 않다. 자칫 시간과 국력만 낭비한 ‘세종시 논란 재판(再版)’이 될 수도 있다.

개헌 없이도 대통령이 총리와 장관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권력집중 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다. 청와대가 각 부처 국장급 인사까지 개입하는 관행만 바꿔도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무리한 개헌 추진보다는 차기 대권 주자들이 개헌 여부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공약화해서 국민의 판단과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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