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人共치하의 참상, 젊은 세대에도 알려줘야

동아일보 입력 2010-09-28 03:00수정 2010-09-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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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을 감행한 북한 인민군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피란을 가지 못한 140여만 명의 서울시민은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한 9월 28일까지 3개월간 꼼짝없이 북한 인민공화국(인공·人共) 치하에서 살아야 했다. 공산주의의 실상을 뼈저리게 체험한 악몽의 나날이었다. 당시 13세 소년이던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한국근현대사)는 “30년보다 긴 3개월이었다”고 회고했다.

60년 전 그때 서울 도처에는 북한군의 서울 입성을 환영하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벽보와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많은 우파 지식인과 지주(地主), 북한군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인민재판에 회부된 뒤 총살당했다. 북한군의 식량 강탈로 수많은 서울시민이 먹을거리를 구하러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거나 풀로 연명해야 했다. 눈에 띄는 젊은이들은 무차별로 이른바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북한군 치하의 전국 대부분 지역이 비슷한 생지옥을 경험했다.

6·25전쟁으로 남한의 민간인만 24만여 명이 사망하고 12만여 명이 학살됐다. 8만4000여 명이 납치되고 30여만 명이 행방불명됐다.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지 못해 적군에 점령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참혹한 기록이다. 북한은 1948년 9월 정권 수립 후 치밀하게 전쟁 준비를 한 반면 우리는 탱크 한 대, 전투기 한 대 없이 전쟁을 맞았다. 전쟁 발발 당일까지도 ‘설마 북이 남침하겠느냐’며 무사태평이었다.

오늘 서울 수복 60년을 맞는 마음이 무겁다. 수복을 기념하는 것도 좋지만 한 차례 요란한 행사를 벌이고 망각해버린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록 등을 통해 인공 치하의 참상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젊은 세대들도 그 시대의 아픔을 알게 해야 한다.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국민이 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를 수호하자면 국민의 정신무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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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남침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6·25전쟁 당시 우리가 겪었던 참상이 아직도 북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김정일 집단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제2의 남침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만이 6·25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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