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4억 명품녀’의 선정주의

동아일보 입력 2010-09-15 03:00수정 2010-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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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에도 심심치 않게 소개되는 패리스 힐턴의 직업은 무엇일까. 힐턴호텔을 소유한 힐턴 가문의 상속녀로 소개되지만 상속녀는 직업은 아니다. 가끔 광고모델로 일하지만 직업 모델은 아니다.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기에 영화배우는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유명한 것은 사치스럽고 방종한 생활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흥밋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가 없으면 전 세계 파파라치들이 굶어죽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달 7일 케이블TV M.net 프로그램 ‘텐트 인 더 시티’에서 “지금 몸에 걸치고 있는 것만도 4억 원”이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던 김모 씨가 힐턴 못지않은 화제의 중심에 섰다. 뚜렷한 직업도 없이 수억 원대 명품을 부모 용돈으로 구입한다는 그의 발언은 경제 위기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허탈감을 안겨줬다. 일부 누리꾼은 “부모가 준 돈으로 호화생활을 한다면 증여세를 부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국세청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했다.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때 일본에 가 있었던 김 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방송사가 시키는 대로 대본을 읽었다”고 고백하면서 사태는 양측 간 진실게임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김 씨는 자신의 직업이 모델인데도 방송이 ‘무직’으로 포장했고 녹화 때 걸친 명품들도 작가들이 4억 원이라고 말하라고 시켰다고 주장했다. M.net 제작진은 “김 씨는 제작진이 ‘마사지’할 수준을 넘어선 사람”이라며 관련 주장을 부인한다.

▷지상파 ‘공룡’이 방송을 사실상 지배하는 가운데 케이블TV들은 틈새시장을 따내기 위해 기발한 내용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남녀탐구생활’이나 ‘슈퍼스타K’ 같은 프로그램은 케이블TV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아울러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선정주의에 무조건 매달리기도 한다. 올해 8월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는 일본 도쿄의 유명한 우동 집에서 한 끼 점심식사를 위해 당일치기 일본 여행을 다니는 여성을 등장시켰다. 더 심한 ‘명품녀’를 앞세워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는 M.net의 욕심이 이번 사태를 부른 것이 아닌지 케이블TV의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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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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