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자 월드컵 3위, 한국 또 희망을 보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독일에서 개최된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 6경기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스트라이커 지소연은 8골을 기록해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수비벽을 넘겨 프리킥을 두 번이나 골로 직접 연결하는 묘기를 보여줬다. 그가 상대 진영을 휘젓고 다니며 찬스를 포착해 슛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 몸의 민첩성과 발 기량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팀은 준결승에서 우승팀인 독일에 1-5로 패했지만 콜롬비아와 3, 4위 결정전에서 1-0으로 승리해 세계 3위로 등극했다. 독일에는 105만 명 이상의 여자선수가 등록돼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선수가 1404명에 불과하다. 여자축구의 불모지 같은 현실에서 3위를 만들어낸 저력과 기량을 발전시켜나가면 2년 뒤에는 독일도 꺾고 월드컵 우승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여자 월드컵 3위의 견인차 지소연의 이야기는 한국 여자축구의 땀과 눈물을 상징한다. 아버지는 딸이 축구를 시작하자 심하게 반대했다. 어머니는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부모의 이혼이 겹쳤다. 어머니는 지금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전세 임대주택에 살지만 항상 딸의 선수생활 뒷바라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가 환하게 웃을 때면 대문니 사이가 벌어진 치열이 드러난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고 운동하느라 시간이 없어 치아교정을 못했을 것이다. 그 나이 또래의 소녀들이 맵시를 낼 때 소연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땀을 흘렸다. 소연의 대문니가 사랑스럽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실버부트(득점왕 부문 2위)와 실버볼(최우수선수 부문 2위)을 수상했다. 해외 저명 팀의 입단 제의도 기대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더욱 겸손하고 노력해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를 쓰기 바란다.

척박한 환경과 무관심 속에서 선수와 지도자들은 훈련을 거듭하며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여자 대표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무관심 속에서 외길을 달려왔다. 그저 축구가 좋아 선택한 소녀들이다. 대부분 어려운 가정환경을 지닌 이들 중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축구화를 사는 것조차 경제적 부담이 됐다는 선수도 있다. 지도자들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견디면서 이들의 재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기꺼이 헌신했다.

신세대들의 거침없는 패기와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은 여자축구에서도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다. 여자축구가 또 다른 희망을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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