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안대회]정조시대 거품 낀 과거 응시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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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1800년 3월 24일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이러한 대목이 보인다. “과거시험 일로 연일 응대하느라고 지쳐 쓰러질 뻔했습니다. 시험을 보는 유생의 수가 이렇게 많은 것은 처음 볼 뿐만 아니라 들어본 일도 없습니다. 시험장에 들어와 답안을 바친 사람의 수효를 적어 보내는데 보시면 웃음이 터질 것입니다.”

응시자 수 당시 한양 인구에 육박

정조의 말처럼 실제로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시험을 치렀는데 응시자가 각각 11만1838명과 10만3579명이고 시권을 제출한 자가 각각 3만9870명과 3만2884명이었다. 기록적인 응시자로 인해 압사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당시 한양 인구가 최대 30만 명이었다. 응시자 수가 시민 수에 육박했으니 한양이 얼마나 들썩였을지 예상할 수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정조와 신하들은 웅장하다고 서로 축하했다. 흐뭇해할 만도 하다. 교육정책이 성공했음을 모든 백성에게 정확한 수치로 보여주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라도 정조의 마음 한구석은 뿌듯했을 것이다.

당시의 모습을 보면 지금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조건이 상당히 다르기는 하지만 교육과 인재 배출의 통로라는 점에서 그때의 응시자 수는 지금의 대학 진학자 수와 비교할 만하다. 둘을 함께 보면 현대 한국의 교육열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현상이 아니다. 교육과 시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지위와 신분과 부가 얻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84% 내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학생 모두가 최고 등급의 교육을 받음을 뜻한다. 이 눈부신 비율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오기 어려운 수준이다. 많은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결과이고, 한국 발전의 추동력으로 꼽기도 한다. 그렇게 볼 근거도 충분하다. 외형적인 규모로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는 한국이 지속적 발전을 예약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지는 의문이다.

다시 정조 말년으로 돌아가면, 응시자 수의 급격한 팽창은 당시 1000만이 안 되는 인구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비약적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암울하다. 합격자는 응시자의 100분의 1에 불과하고, 더욱 암울한 사실은 합격자 대부분은 결코 임용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들은 심리적 만족이라도 안고 산다. 응시자 대부분은 불합격하는데 이들과 그 가족은 한평생 노동하지 않고 밥을 먹는 교양 있고 신분이 좋은 양반이다. 성호 이익 선생이 나라의 ‘좀벌레’라고 말한 부류이다.

교육 받아도 써먹을 데 없어 문제

사회는 수용할 능력도 없는데 불필요한 인재를 과다하게 배출했다. 배출한 인재라 해도 대다수는 획일적인 교육내용으로 서로 차별화가 되지 않았다.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까마귀 수백 마리인 셈이다. 교육을 오래 받은 사람은 교육을 받아도 써먹을 데가 없었고 써먹을 기회를 얻은 사람은 능력이 없었다. 정조가 뿌듯하게 여긴 수많은 인력이 그의 사망 이후 빠르게 쇠락의 길에 들어선 조선사회에서 제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알 수 없다. 외형으로는 화려한 성과를 보였으나 거기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었다는 말이다.

현재의 교육현황을 정조 시대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거품이 끼어 있고 내용을 보면 암울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한 사교육비가 엄청나고 대학에 가본들 교육이 부실하며 대학을 나와도 직업을 얻기 어렵다. 다 알다시피 대학 가는 비율은 세계 최고이지만 만족도는 바닥이다. 그렇게 오래 가산을 기울여 배웠으나 써먹을 데가 많지 않고, 써먹을 기회를 얻은 사람은 능력이 떨어진다고 불만이다.

게다가 갈수록 대학 교육시스템과 교육내용의 질적인 열악함, 취직 잘되는 일부 학문 분야로의 인재 쏠림 현상, 획일적인 교육과 다양성 부재,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대학의 직업 학교화 같은 많은 문제가 더 심화된다. 겉으로는 84%에 이르는 대학진학률이 우리 교육의 비약적 성공을 웅변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가정과 개인의 좌절, 사회와 집단의 불만을 담고 있다. 고등교육의 급격한 양적 팽창이 질적 저하현상과 맞물려 사회문제를 동반하며 미래를 불안하게 유도할지 모른다.

교육정책부서와 정치가는 교육의 거품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학생과 부모는 교육에 대한 환상을 조절하지 못했으며, 대학은 이런 현상을 이용하지 않았는지 되짚어보고 반성할 시기이다. 정조가 뿌듯해한 교육 열기는 다음 세대에는 급속도로 식었고 제도는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로 부패하였다. 국력의 쇠퇴를 촉진한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굳이 먼 옛날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제 더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지표상으로는 외형적 성장을 했던 교육이 과연 성장을 견인하는 동력이 될지 아니면 쇠락을 재촉하는 요인이 될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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