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진영]‘정말 귀중한 연사’의 어느 기업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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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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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중한 분을 연사로 모시겠습니다. 정말 바쁘실 텐데 포스코를 위해 강연을 해 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서관 4층 아트홀. 포스코가 마련한 특별 강연회 사회를 맡은 관계자가 ‘정말’이라는 단어를 쓰면서까지 소개한 연사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었다. 이 위원장은 ‘세계 속의 한국, 클린 경영이 기업경쟁력이다’를 주제로 정준양 회장 등 임원과 팀 리더급 이상 간부 300여 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국민권익위원장 취임 후 주로 공무원을 상대로 강연을 하고 있는 이 위원장이 기업에서 강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위원장의 강의는 포항과 광양제철소에도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제철소에서 근무하는 포스코 임원과 출자회사 임원, 협력회사 사장 등 700여 명이 제철소 강당에서 화상으로 이 위원장의 강의를 지켜봤다.

권익위원회에서 준비한 15분 분량의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 단상에 오른 이 위원장은 “귀한 시간을 내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경제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평생 정치 활동만 하다 보니 기업이나 기업 경영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고 운을 뗐다.

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없고, 스스로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밝힌 ‘실세’가 기업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참석자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이 위원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강연은 대학에서 제적당한 사연부터 시작해 군대 시절을 거쳐 정치입문 과정, 국회의원 시절 활약상, 현 정부 출범 후 낙선하고 해외에서 체류한 이야기 등으로 이어졌다. 강연 주제와 크게 관계없는, 위원장의 인생 역정이 40분 이상 이어지자 예상과는 다른 내용에 지겨운 표정을 짓는 참석자도 일부 눈에 띄었다.

70분 정도 진행된 강연 중 그의 개인사가 아닌 내용은 강연 막바지에 부정부패가 청산되어야 하는 당위에 대해 15분 정도 이야기한 게 전부였다. 그 내용도 평소 그가 강연하는 공무원에게 적절한 내용이고 기업인에게 꼭 맞는 내용은 아니었다. 강연 주제와 직접 관련된 내용은 ‘포스코처럼 윤리 경영을 잘하는 기업이 일류기업이 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전부였다.

주제에서 빗나간 이 위원장의 강연이 이어지는 동안 포스코 임직원들과 출자회사 임원 등 1000여 명의 ‘귀한 시간’도 지나갔다. ‘정말 귀중한 분’의 귀한 시간은 그를 필요로 하는 다른 곳에서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진영 산업부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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