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혜]이해하기 힘든 세상사

  • 동아일보

“전교조 명단 공개를 전교조에서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건전 오락성의 사조직도 아니고 친일파처럼 나쁜 것도 아닌데 이해가 안 가서.” 이는 인터넷 지식검색란에 올라온 질문이다. “의원님 북한에 왜 퍼주십니까. 쟤들이 왜 죽었습니까, 주면 무기만 만들어서…. 이북 주란 말 좀 그만 하세요. 피가 끓어요.”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에서 한 장병의 어머니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한 얘기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와 한나라당 일부에서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하신 것이다”라고. “그러면 누구의 소행인가요? 알고 싶어서요”라며 또 지식검색란에 올라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의 사회에 살다 보면 때론 혼돈에 휩싸여 정말 알 수 없는 일들도 많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고충은 아직도 계속되는지,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되어도 막상 북한이라고 말을 못하는 희한한 분위기가 있다. 햇볕을 자꾸 쏘이니까 지배계급만 따뜻해지고, 다 쓰러져가다 기운 내서 엉뚱하게도 살려준 이들을 못살게 굴어도, 뭐라고 말도 못하고 계속 햇볕만 쬐어 주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현직 군수가 공천 뇌물을 건네다 고발당한 사건이 있었다. 일반적 스토리라면 고발당한 사람이 비난받는 것이 상례인데 분위기가 묘하다. 과연 공천헌금이 만연한 모양이라며 추측을 확대하거나, 안 받으면 그만이지 고발까지 할 거 있냐는 온정주의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국민의 심정은 복잡해 칼로 자른 정의감에 박수만 칠 만큼 단순하지 않다. 사건의 이면과 연결고리를 추적하는 고발 프로그램들로 단련돼선지 웬만한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으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선호직장 1위’에 쏟아지는 비난

삼성이라는 기업에서 한때 100억 원에 가까운 수입을 얻었다는 한 변호사는 그 회사를 상대로 수시로 비판의 날을 세우며 주목받으며, 저서로 돈도 벌고 있다. 대기업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지만 부정이 더 크고 기여는 눈곱만큼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거기에 또 많은 젊은층이 박수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못된 기업이라는데 젊은이들이 가고 싶은 직장을 조사하면 늘 1순위에 오르고, 주식공모에는 결혼자금으로 모은 적금까지 깨서들 몰려든다. 유난스러운 비판은 버림받은 사랑의 병적 증오심과 닮은 듯하다. 더구나 대기업의 사회적 기여가 미미하다며 비판을 한 그 사람은 일반인이 상상도 못할 100억 원을 벌어 과연 얼마나 사회에 기여했을까. 거기에 맞장구치는 우리들은 수입의 얼마를 사회에 환원했던가.

필자가 학생 때 교복을 맞추러 가면 교복집 주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학생은 키가 커서 돈 더 받아야겠어.” 그러면 모친은 바로 이렇게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 키 작은 학생에게선 덜 받았나요?” 위만 바라보는, 혹은 남만 탓하는 사고의 오류는 많다. 또한 우리는 주요 인물에 대한 고발의 경우에는 그 고발의 동기와 이유에 대해서 관대한 면이 있다. 부정한 청탁이나 돈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정의를 가장해 하는 고발이라도 기자나 독자나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을 본다.

천안함 사건에 관해서는, 그 내용을 떠나 참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 카메라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슬픔에 흐트러지고 흥분상태에서 쏟아내는 거친 원망을 그렇게도 거르지 않고 적나라하게 노출해야만 했을까. 전국으로, 온 세계로. 통곡과 절규의 현장에 쫓아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만이 보도의 진정한 자세인지 진정 의문이다. 엄숙한 조문 문화를 선도해야 할 언론매체의 역할은 둘째 치고라도, 누구도 그런 모습으로 TV나 신문에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재산 적은 공직자 나라살림 잘하나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병폐로 남의 재산 들여다보기, 비교하고 울분하기의 문화가 언급된다. 사실 재산이 많은 게 죄악은 아닐 것이고, 재산 없는 사람이 무조건 청렴한 것도 아닐 텐데 일단 액수만 관심사항이다. 재산관리 능력이 좋은 이에게 나라살림을 맡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반대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노동자들도 잘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노조의 예산도 규모가 상당할 텐데 재산 없는 간부에게만 노조 살림을 맡긴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본 것 같다.

전교조 명단공개 중단결정과 관련해 하루에 3000만 원씩 부과된 간접강제금이 화제다. 평균적 사건에 부과되던 액수에 비해 차이가 터무니없이 크다면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객관적이고 합리적 양심에 따라서만 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을지 상식적으로도 의문이 든다. 아무도 법관 앞에서는 싫은 소리를 못하기 때문에 전지전능의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닌지도 궁금해진다.

김영혜 객원논설위원·변호사 yhk888@paran.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