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제 불법 인공임신중절(낙태) 예방 종합대책을 내놨다. 청소년 미혼모가 24세가 될 때까지 양육비와 의료비를 지원하고 학교에도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불법낙태는 신고를 받아 검찰에 고발한다는 내용이다. 젊은 산부인과 의사 모임인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낙태 수술 병원과 의사들을 검찰에 고발해 촉발된 낙태 논쟁을 절충한 대책이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약 1000건, 연간 약 35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진다. 그중 약 95%가 현행법상 불법낙태이다. 가임(可妊)여성의 낙태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강간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 5가지 경우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10대 중고교생이나 양육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여성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나 사회가 책임질 수 없는 출산을 강요하면 다양한 사회적 후유증이 파생될 가능성이 크다. 낙태 반대자들이 따라다니며 돌봐줄 리도 없다.
미혼 여성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도덕적 비난은 여성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현실이다. 미혼모가 아이를 출산해도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고 외국에서처럼 부모가 미성년 딸에게 피임을 권유할 수 있어야 낙태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청소년에 대해 성교육과 함께 실질적인 피임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낙태 문제 해결은 단속과 처벌만으론 한계가 있다. 정부가 불법낙태 단속을 강화하면 당장 낙태 수술비용이 올라가고 뒷골목 무면허 낙태나 외국 원정낙태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그럴 경우 저소득 저학력 여성이 낙태 금지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낙태는 종교 문화 역사 철학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여서 전면 금지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미국은 임신 12주까지, 일본은 임신 153일까지 합법으로 돼 있다.
낙태를 둘러싼 생명권과 선택권의 문제는 인류 역사에서 오랜 논쟁거리의 하나다. 정부의 낙태 대책이 태아도 생명체라는 생명존중 차원이 아니라 저출산 대책 차원에서 출발한 것은 본말이 뒤바뀌었다고 비판받을 소지도 있다. 이번 기회에 낙태 문제를 공론화해 법이 현실과 맞지 않다면 개정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 당국자를 비롯해 각자 자신의 10대 딸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보는 데서부터 낙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