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원전과 카지노의 닮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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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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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8일. 싱가포르 의사당을 리셴룽 총리(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가 찾았다. IR(Integrated Resorts·복합리조트) 건설 설득을 위해서다. 이런 것까지 할 만큼 싱가포르 총리는 한가한 걸까. 아니다. ‘내국인카지노 허가’가 IR의 핵심이어서다.

IR는 호텔 쇼핑몰 공연장 전시장 컨벤션 카지노 등 관광 관련 주요 시설(비즈니스 트래블 포함)을 한곳에 집중시킨 신개념 복합리조트. 리셴룽 총리는 이거야말로 싱가포르 관광산업을 다시 일으킬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싱가포르가 어떤 곳인가. 껌만 뱉어도 벌금을 물리는 ‘질서천국’의 깐깐한 나라다. 그러니 도박 합법화를 전제한 IR 제안은 국가중대사였다.

당시 싱가포르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아태관광시장 점유율은 1998년 8%에서 2002년 6%로, 평균 체류 일수도 1991년 4일에서 3일로 줄었다. 총리는 ‘더는 볼 게 없는 나라’로 전락한 현실을 일깨우며 경고했다. 관광객 감소가 단순한 숫자놀음에 그치지 않음을. 호텔 식당 상점 택시 컨벤션 항공업의 성패가 거기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에서 도박 합법화 시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1985년 경기후퇴 때 센토사 섬 카지노 제안이 그것. 그러나 당시 고촉통 총리에 의해 거부됐다. 그걸 리셴룽 총리가 다시 꺼내기는 쉽지 않았을 터. 이날 그는 경제진단위원장 재임 시 ‘도박장 개설’ 제안에 반대하며 소위에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요지는 이랬다. 경제적 이점은 인정되지만 도박중독 돈세탁 불법사채 조직범죄 같은 사회적 해악이 예상돼 섣불리 도입할 수 없다는.

이런 반대론자가 카지노 자본을 바탕으로 한 IR 개발 추진을 제안한 이유는 뭘까. 중국과 인도, 두 나라 관광객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도시 재정비로 급성장한 런던 뉴욕 파리 홍콩 등과의 경쟁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IR는 통상의 카지노와 다르다고 그는 설명했다.

도박산업과 원자력발전은 공통점이 있다. 위험 대비 수익의 효과다. 그 공은 ‘제어장치’다. 핵에너지 제어기술로 원전은 지구를 구할 클린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카지노도 비슷하다. 엄격하고 면밀한 규제통제(Control & regulations)로 사회경제개발의 엔진 역할을 인정받았다. 거대 카지노자본 유치로 도시개발과 관광수익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손 안대고 코풀기’ 식의 개발주체, 라스베이거스가 그 예다. 리셴룽 총리의 IR담론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제안으로 싱가포르는 벌집 쑤신 격이 됐다. 하지만 이듬해 논란은 종식됐다. 여당의 압승으로 도박이 합법화된 것. 센토사 섬과 마리나베이(도심)가 각각 겐팅하일랜드(말레이시아 카지노자본)와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미국 카지노자본)에 의해 가족과 컨벤션 비즈니스 개념의 IR로 개발됐다. 그 카지노가 내달 문을 연다.

이 해묵은 스토리를 소개하는 이유. 도박 혐오증에 사로잡힌 순진한 백성이 설 땅이 이 지구상에 더는 없을 것 같은 우려다. 이젠 우리도 낙후된 관광인프라를 개선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며 몇 배의 관광달러로 고수익을 낼 전향적이고 진취적인 카지노활용 관광전략을 논할 때다. 왜냐면 중국의 해외관광객이 2012년 1억 명으로 늘고 일본과 대만이 이미 IR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늦게 일어난 새에게는 먹을 벌레가 없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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