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병훈]국립자연박물관 세워 생물다양성 회복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유엔은 생물다양성협약을 체결한 지 10년이 되는 2002년에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2010년을 ‘생물다양성의 해’로 정하고 이해 10월에 협약 당사국 193개국이 일본 나고야에서 만나 좀 더 구체적인 장기 계획을 세우도록 만들 예정이다. 예를 들면 외래종 침입을 차단하고 어획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며 육지와 바다에 보호구역을 확대하고 생물다양성 손실의 주범인 산림 벌채를 줄이도록 요구할 태세다.

우리나라 생물은 약 3만3000종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멸종위기 종으로 221종이 지정됐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 590만 t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7위이고 증가율이 가장 빨라 한반도가 아열대로 급속히 바뀌는 중이다. 동식물이 서늘한 고지로 옮기다가 더 오를 데가 없어 멸종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생물 종이 자연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모른다. 하루나 1년에 얼마나 사라지는지도 모른다. 간접적이거나 막연한 추정만이 있을 뿐이다. 선진국의 대형 자연박물관이 자국은 물론 전 세계에 걸쳐 200년 전부터 수집한 막대한 수의 표본을 근거로 야외 조사를 병행해 생물다양성 쇠퇴를 억제하기 위한 전략적이며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경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최근에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호랑이는 백두산과 함께 우리 민족의 혼을 담고 있는 상징이 됐으나 1921년에 최종 포획된 이후 관찰되지 않아 절멸됐음이 확실하다. 한반도에서의 호랑이 살상은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제도적이었다. 호랑이 가죽을 나라에 바치는 호피공납제가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에는 20세기 전반 18년 사이에 호랑이 97마리와 표범 624마리를 포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많은 호랑이가 살상됐음에도 표본으로나마 남아 있는 것은 1907년에 잡힌 후 박제되어 전남 목포의 유달초등학교에 있는 단 한 마리뿐이라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한반도에서 호랑이와 표범이 사라진 것은 한반도에 일어난 가장 암울한 생태적 비극이다. 서울대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과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현재 극동러시아 연해주에 사는 약 450마리의 시베리아호랑이가 유전자(DNA) 검사 결과 한국호랑이와 매우 가깝다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자연이 함께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국립자연박물관도 없다. 오클라호마대의 매어스 교수가 국민소득 1만 달러 이상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연박물관 수에 따르면 한국에는 자연박물관이 180개 있어야 한다. 한국엔 현재 10여 개뿐이며 그나마 열악하기 짝이 없다. 작년 말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립자연박물관 건설에 기초조사비로 7억5000만 원을 배당하였다고 발표했다. 4대강 사업 때문인지 진전이 없다. 역대 문화부 장관이 비슷하게 공수표를 남발한 바 있다.

현재 국립자연박물관을 유치하려고 경기도, 서울 용산과 노원구, 인천시, 경북도, 전북 남원시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이런 열망을 어째서 외면하는가? 정부는 전국의 주요 시도에 국립자연박물관을 세우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여 기왕에 높이 든 녹색성장의 기치에 걸맞게 탄소배출 감축만이 아닌 진정한 녹색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호랑이 복원에도 힘을 실어 문화국가로서의 국격과 브랜드 제고에도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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