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바보야, 문제는 일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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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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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어느 국회의원이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고 학생들만 보인다”고 지역구 사정을 소개한다. 산업단지를 만들어봐야 기업이 오지 않는다. 회사 일자리가 태부족이니 되든 안 되든 소규모 자영업에 손댈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몇 집 건너 밥집이니 오래 버티기 힘들다. 기업형 일자리가 더 생겨야 고정수입으로 외식도 자주 할 텐데, 투자와 일자리와 소비가 선순환되지 않고 있다.

일자리 못 만들면 親서민 아니다

고교 졸업생 100명 중 84명이 대학에 가지만 4년 만에 졸업하고 바로 직장 구하기는 쉽지 않다. 전공을 살리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지방에는 노는 자원이 넘친다. 취업 재수·삼수는 보통이고, 전문지식을 활용할 기회는 별로 없다면 개인만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이 아니다. 유휴노동력만큼 국가자원이 유실되고 성장잠재력이 떨어진다. 기계도 오래 안 쓰면 녹슬지만 사람은 더하다.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하려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도 일자리가 많아져야 성공할 수 있다. 가구소득 상위 30%를 제외한 연소득 4800만 원 가구의 자녀까지 대학등록금을 대출해주고, 취업 후 연소득이 최저생계비 이상 되면 갚도록 하는 제도다. 연 10조 원어치씩 채권을 발행해 빌려주고 ‘떼이는 손실’을 줄이려면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

이 제도 덕에 대학 다니기가 쉬워져 진학률이 더욱 높아지면 부실 대학들에는 힘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 않으면 대졸자 취업난이 더 심해져 상환율이 떨어지고 결국 재정 악화와 납세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교육부 한 당국자는 “대출받은 여학생이 졸업 후 직업을 갖고 최저생계비를 벌 때까지 일을 하면 빚을 갚아나가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결혼하면 부부 별산제라 회수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빚을 안 갚으려고 지하경제 수입으로 살아가려는 얌체족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저소득 저신용 계층에 담보나 보증 없이 저금리로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미소(美少)금융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이용자들이 창업에 성공하고 돈을 잘 갚기 위해서도 일자리가 많아지고 구매력이 커져야 한다. 융자관리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내수시장이 확대되지 않고 창업 성공률이 떨어지면 그렇지 않아도 흔들려온 신용경제가 더 무너질 우려가 있다.

고용을 늘리지 못하는 복지는 오래 갈 수 없고 진정한 친서민이 아니다. 특히 생산적이지 못한 선심성 복지는 국가의존적 국민을 양산하고 근로의욕과 자립의지를 떨어뜨리는 등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이래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고, 후세대의 미래도 어두워진다. 재정을 악화시킨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기도 어렵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 방해하나

반대로 일자리를 늘릴 수만 있으면 복지가 저절로 증진되고 납세자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요 최고의 분배’라는 말은 식상할 정도다. 이처럼 진실은 분명한데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고 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면 21만 명의 고용효과가 생길 것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예측했다. 제도 도입에 미온적인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조차 1만∼5만8000명의 고용효과를 인정한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이 제도 또한 부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정책은 계속 보완하면 된다. 정부가 잘만 관리하면 의료고급화 경쟁으로 의료서비스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요컨대 국민 사이의 이념적 정치적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 힘써야 할 당국자들이 스스로 부자와 서민을 나누고, 사회적 위화감에 편승하니 문제가 안 풀리는 것 아닌가.

우리 국민은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나는 믿는다. 반세기 전만 해도 형편없던 제조업은 대외개방과 치열한 경쟁 환경에 놓이면서 오히려 자생력을 키워 우리 경제의 최대 버팀목이 됐다. 김대중 정부가 대일 문화개방을 할 때 ‘나라를 왜색(倭色)으로 뒤덮으려는가’ 하는 반대론도 강했지만 그 후 우리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 문화 한류(韓流)를 수출하고 있다. 교육도 외국어고를 죽이네 살리네 하는 수준을 넘어서 외국학교를 국내로 대거 끌어들이는 개방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충격 속에서 우리 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길이 열리고 일자리도 훨씬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병원 학교 금융권 등 많은 서비스분야는 기득권층과 노조의 목소리가 유난히 높다. 서비스업 노조의 힘이 한국처럼 막강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키우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이들의 기득권 유지도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자식 손자 세대의 먹을거리까지 생각하는 책임감을 발휘할 때가 됐다. 정부와 국민 각계의 최대 책무이자 자구책은 끊임없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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