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군통합 번복, 이 무슨 장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행정구역 자율통합 대상으로 발표된 6개 지역 가운데 경기 안양-군포-의왕과 경남 진주-산청 두 곳이 제외됐다. 정부가 발표 내용을 불과 이틀 만에 스스로 번복한 것이다. 이들 지역이 통합될 경우 선거구를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해당 지역 주민에게 혼란을 준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신뢰 손상이 심각하다. 이런 뒤죽박죽 행정으로 각종 반발이 예상되는 나머지 시군의 통합이나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어떻게 추진할지 걱정이다.

제외된 두 곳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및 신성범 원내공보부대표의 선거구와 관련이 있다. 안 대표의 선거구는 의왕-과천, 신 부대표의 선거구는 산청-함양-거창으로 안 대표의 선거구에서 의왕을, 신 부대표의 선거구에서 산청을 떼어내면 남은 지역만으로는 독자적인 선거구 유지가 어렵다. 당초 안대로 통합이 이뤄진다면 어떤 식으로든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선거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발표 내용 번복에 정치적 고려나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

이번 통합을 주관해온 행정안전부가 선거구 변경이 발생한다는 점을 사전에 몰랐어도 문제이고, 알고도 발표했다가 유력 의원들의 반발에 밀려 발표를 번복했어도 문제다. 어느 쪽이든 행안부 측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행안부가 수개월에 걸쳐 자율통합을 준비해 왔고, 번복이 있기 전에 안 대표가 행정구역 통합 방식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 점을 놓고 보면 정치적 고려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는 2014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모든 행정구역 개편을 완료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12월 정기국회에서 관련법도 통과시킬 계획이다. 전국 230개 시군구를 50∼60개로 통합한다는 것이 기본 구상이다. 정부가 이번에 자율통합 대상 지역을 선정해 발표한 것은 행정구역 통합의 모델로 삼는 동시에 전국적인 개편 작업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첫걸음부터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구 조정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약 100년 전에 만들어진 행정구역을 오늘날 현실에 맞게 고치는 일은 지방행정의 효율화, 지역 발전,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 그런 만큼 행정구역 개편을 선거구 조정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마땅하다. 선거구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려선 안 된다. 정부가 하는 일이 늘 왜 그 모양이냐는 말이 더 안 나오게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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