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인찬]‘허경영의 허풍’ 띄우는 방송들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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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지상파 OBS의 개그 프로그램 ‘코미디다 웃자고’의 ‘100날 토론’ 코너에 허경영 씨(59)가 출연했다. ‘100날 토론’은 개그맨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으로 분장해 정치나 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개그 코너다.

이 코너에는 허 씨를 패러디한 허경엉(김대희)도 나왔다. 이날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주제를 다뤘는데 허경엉은 “우리나라에는 허경영 백신이 있다”며 허 씨를 소개했다.

허 씨는 김 전 대통령 역할을 맡은 이봉원 씨를 보고 “내가 투시를 할 수 있다. (이 씨의) 갑상선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허 씨는 잠시 자신과 눈을 마주치라고 한 뒤 “바로 고쳤다”며 “이건 코미디가 아니라 실제”라고 말했다.

허 씨는 박 전 대표를 연기하는 강유미 씨를 가리켜 “저 사람은 결혼을 못하는 문제가 있다. 내가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해”라고 말했다. 그는 오른손 검지로 이마를 누르며 하루 세 번 허경영을 외치면 남자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 씨는 2007년 대선에서 박 전 대표와 관련한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 훼손 혐의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아 7월 23일 출소했다. 그는 출소하자마자 케이블 채널 Y-STAR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기 3일 전, 그의 영혼이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케이블 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서는 ‘내 이름만 불러도 병이 낫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방송사들은 허 씨의 주장이 믿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출연시키고 있다. 황당하긴 해도 그의 발언 덕분에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화성인 바이러스-허경영 편’은 케이블 채널에선 비교적 높은 1.4%의 시청률을 올렸다. 허 씨 측은 한 케이블 채널이 주 1회 방영하는 ‘토크 쇼’의 진행도 맡을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해당 채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또 인터넷 매체들은 허 씨의 돌출 발언과 행동이 나올 때마다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허 씨가 지금까지 주장한 말은 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방송사나 인터넷 매체들이 시청률이나 흥미를 위해 그 주장을 여과 없이 옮기는 것은 매체의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화성인 바이러스-허경영 편’에 대해 비과학적 내용을 금지(방송심의규정 41조)하는 조항을 위반했다며 이번 주에 제재 수위를 논의할 예정이며 허 씨가 출연한 다른 프로그램도 조사하고 있다. 허 씨의 주장처럼 비과학적이고 황당한 내용을 방영하는 것은 기존 사례로 볼 때 징계 수위가 낮지 않을 듯하다.

황인찬 문화부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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