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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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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8일자 A1면 참조
▶1930년대 ‘발레 춘향전’ 사진 찾았다
그 시절에 거장 예술가들의 손으로 우리의 고전이 발레로 만들어져 공연됐다는 것도 놀랍지만, 무용사적 의미가 있는 이 자료들을 찾아낸 사람이 평범한 유학생이라는 점도 놀랍다.
포킨의 ‘사랑의 시련’에 대해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가 1970년대 초부터 국내에서 신문 등에 여러 차례 소개했으나 국내 무용계는 무관심했다.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김승열(30·프랑스 파리8대학 박사 과정) 씨만이 3년 전 본보에 실린 최 교수의 칼럼을 읽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사랑의 시련’을 검색했다. 그러고는 당시 포킨의 ‘사랑의 시련’이 공연됐을 법한 오페라극장의 자료실을 찾아다녔고 핀란드까지 날아가 이곳 국립발레단이 리메이크한 ‘사랑의 시련’의 공연 사진과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무용계는 ‘사진 속 의상과 무대가 중국 색채가 짙다’며 과연 ‘춘향전’을 토대로 한 것인지 의심만 했을 뿐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작품 추적에 관심을 보였던 국내 모 재단도 각종 자료에 나온 무대가 ‘중국풍’이라는 이유로 추적 작업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김 씨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료를 찾은 끝에 공연 자료뿐만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대출판사가 1982년 펴낸 ‘콘사이스 옥스퍼드 발레사전’에서 “포킨의 ‘사랑의 시련’은 한국 설화를 토대로 했다(Based on Korean Fairy Tale)”는 기록까지 발견했다. 자칫 ‘중국 국적’이란 오해 속에 국내에서 잊혀질 뻔했던 포킨의 ‘춘향’에게 발로 뛰어 가며 ‘국적’을 되찾아 준 것이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 발굴된 70년 전 포킨의 ‘춘향전’ 공연 사진 앞에서 무용계가 기뻐하기에 앞서 먼저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다.
강수진 문화부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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