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본다

  • 입력 2006년 10월 15일 20시 35분


코멘트
달을 가리키는 데 정작 보라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견지망월(見指望月).

9일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미국 책임론'을 지켜보노라면 이 말부터 생각이 난다. '미국 책임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인사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에서도 미국책임론이 강한데 한국 보수세력만 미국을 감싸고 돈다"고 얘기하고 있다.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 이전에 '달'은 애써 외면하고 '손가락'만 가리키며 정쟁화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부시 책임론은 11월 초 중간선거에서 12년 만의 의회권력 탈환을 노리는 민주당 인사들이 주로 제기한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김정일 정권 교체 기도에 위협을 느껴 핵무기를 만들었다. 김정일을 제거할 뜻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문제는 풀린다."(10차례 방북한 셀리그 해리슨 씨의 12일 발언)

"민주당은 제네바 양자협상으로 북한의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막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재임 6년간 협상이 겉돌면서 북한은 핵무기를 몇 개나 만들 플루토늄을 추출했다. 이게 차이다."(웬디 셔먼 전 국무부 대북조정관)

민주당 비판론자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C- 학점 이상을 주지 않는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핵을 정책이나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봤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압제를 그대로 두면 북한이 어떤 협상에 서명하더라도 돈만 떨어지면 제2, 제3의 핵 위기를 일으킬 것으로 봤다. 몰핀 주사로 통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병원(病源)의 처리를 구상했다.

결과론이지만 이런 판단은 현실외교 현장에서 문제의 무게를 과소평가하는 뼈아픈 실책을 불렀다. '잘 줘야 C-'라는 민주당의 평가는 그래서 일면 타당할지 모른다.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면 '부시 책임론'이 솔깃하게 들릴 법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시의 정책 실패와 북한의 핵실험이 '미국 탓'이라는 미국 책임론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1의 책임? 당연히 북한이다. 남의 나라 돈 위조하고, 간첩교육을 위해 외국인 납치하고, 주민을 굶기면서 권력자는 벤츠와 코냑으로 사치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핵무기로 세상을 뒤흔든다면 근원적 책임소재가 어디 있는지는 물으나 마나한 것 아닌가.

민주당 인사들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C- 학점"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그들이 과연 북한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학점을 줄까. 물어볼 것도 없이 F학점이다. 워싱턴에서 느끼는 미국 조야의 부시 행정부의 정책 실패론과 핵실험 책임론은 엄연히 달랐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미국 책임론'은 그래서 사안을 잘못 읽었거나, 의도적으로 논점을 흐리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책임론을 놓고 갑론을박할 때 누가 가장 흐뭇해할까.

눈길을 손가락 끝에서 하늘로 돌려야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