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시론/홍순영]核실험은 햇볕정책 배신 신호탄

  • 입력 2006년 10월 13일 03시 00분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은 이데올로기가 다른 두 정부 간의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시장경제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접촉, 교류, 협력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남북한이 교류하고 협력하면 북한은 경제개발의 큰 업적을 이룩하고 나라를 빈곤에서 구출하는 좋은 정부의 모범이 될 것으로 우리는 기대했다. 남북한이 한 경제공동체로 성장하고 상호 방문과 교류가 자유롭게 되고 나아가서 단일 화폐를 채택하는 단계까지 이르면 평화공존의 과정을 지나 평화통일의 날을 내다보게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

공산주의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성공적인 선례는 덩샤오핑 지도하의 중국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평양정권은 중국의 모범을 거부하고, 나라의 힘은 경제가 아니라 군사력에서 나온다고 믿고 핵무기에서 정권과 나라의 생존 보장을 구하는 선군정치의 정치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평양정권은 덩샤오핑과 달리 시장의 개방, 나라의 개방이 자유와 풍요의 큰바람을 불러들여 혼란과 민중의 반란을 일으킬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 안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난 5년 동안 햇볕정책이 일진일퇴하면서 답보한 이유이며 배경이다.

물론 햇볕정책은 남북간의 접촉과 교류의 물꼬를 트고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는 데 기여했다. 이산가족 상봉, 분야별 인적 교류,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한이 상대방의 체제와 삶의 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북한 주민이 바깥세상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됐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역설적으로 남한 사람이 북한체제의 무자비한 독재정치, 김일성 주체사상의 신성화, 그리고 참혹한 빈곤의 실상을 보고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남한은 이제 북한의 정부와 인민을 구분하는 눈을 갖게 됐다.

북한의 핵실험은 햇볕정책에 대한 거부의 신호이다.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평화공존을 거부하고 ‘영원한 사회주의 주체공화국’을 고집하고 ‘민족끼리’라는 이름으로 주체정권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는 정치행위가 핵실험이다. 플루토늄 또는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은 정권과 북한이라는 나라의 생사를 거는 사업으로 추진돼 왔다. 북한은 지난해 2월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올해 7월에는 미사일을 실험 발사하고 이제는 핵실험을 감행했다.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면 실용 가능한 핵무기가 나온다.

핵무기가 누구를 목표로 한 것인가는 부질없는 논쟁이다. 남한은 북한의 핵 공갈 앞에 서게 됐다. 미국과의 담판에서도 미국이 아니고 남한이 불바다가 된다는 것이 협박의 최후 카드이다. 핵무기는 반드시 사용해야 힘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는 군사 무기인 동시에 정치적 무기, 심리적 무기다. 남한은 핵을 가진 북한과 평등하게 마주 앉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남북한의 군사적 정치적 심리적 균형을 깨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균형과 나아가 세계질서의 균형을 깨는 중대한 사건이다.

북한은 핵개발에 대한 국제공동체의 제재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의 내용을 분석하기보다는 핵개발 자체를 계속할지, 포기할지 결단해야 한다. 흑백차별제도를 고집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독자 노선을 추구했던 리비아가 국제공동체의 엄숙한 제재에 순응하였던 선례를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집념이나 고집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과 측근 일당이 지배하는 집단독재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국민 전체보다는 집단의 생존이 우선하는 법이다.

장기화하는 핵 위기 중에서 우리는 ‘민족끼리 평화’가 아니라 북한 핵개발의 포기를 요구하고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 한반도 비핵화의 약속을 준수하도록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핵무기를 소유하는 공산주의 주체정권과는 공존할 수 없음을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

역사의 흐름은 자유와 인간존중을 향하고 있다. 그 흐름 안에서 민족도 통일도 가치가 있다. 통일은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풍요를 전파한다는 데 가치가 있다. 평화공존은 이를 향한 과정이다. 통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 위에 서 있고 시장경제를 통한 번영을 추구하는 동아시아의 중간 국가일 것이다. 이 국가는 핵무기를 소유하지 않고 재래식 무기만을 가진 평화 지향 국가이다. 이런 통일 한국의 비전을 지금 거듭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선포하는 통일 한국의 비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국민적 단합이 있을 때 나라의 장래가 있고 힘이 생긴다. 우리의 우선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고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살려 나라의 경제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 있다. 국민적 단합이 있어야 국제공동체의 지지와 협력을 받을 수 있다. ‘민족끼리 평화’만을 추구하면 남한도 북한과 동일시되어 서서히 시차를 두고 소외되고 만다. 나라의 가치관 그리고 그를 향한 국민적 단합을 굳게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다.

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장관·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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