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法위의 민노당?

  • 입력 2004년 5월 21일 19시 09분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 국가의 보편적 원리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교두보를 구축한 민주노동당의 최근 행태를 보면 ‘법치주의는 어디 갔나’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1994∼95년 민주노총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을때 불법시위를 주도하고 지하철 파업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권영길(權永吉) 대표만 해도 그렇다. 그는 항소심 재판 다음날인 20일 “과거 민주화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재판하는 게 맞는 것이냐”며 법과 재판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작년 6월 경남도청에서 열린 행사의 단상을 점거하는 등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강기갑(姜基甲) 당선자도 “집시법이 언제 얘기냐. 기억도 안 난다”며 법 적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노당은 당 지도부 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생존권 투쟁에 앞장서다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민노당은 이제 재야 운동권 단체가 아니라 원내에 10석의 의석을 갖게 된 공당이라는 점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법치주의 훼손은 민노당 지도부 선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성두현 정책위의장 후보는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는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며 자본주의적 정치 경제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했다. 99년 한총련 대표로 방북했다가 구속됐던 황혜로 최고위원 후보는 ‘범국민적인 국가보안법 어기기 운동’까지 제안하고 있다.

법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누구든 법 개정운동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현행법의 실체를 인정하고 준수하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기본이다. 민노당이 의회 진출을 위해 그동안 온갖 노력을 기울여 온 것도 법을 ‘위반’하기보다 자신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온 법을 ‘개정’함으로써 사회발전을 이루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법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도 되는 ‘떫은 감’쯤으로 여기고 있다면 공당으로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윤종구 정치부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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