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나성엽/‘쓴소리’에 귀닫은 철도청

  • 입력 2004년 4월 14일 18시 47분


“갑자기 객차의 실내조명이 꺼져 황당했다.” “비상열차로 갈아타고 1시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터널을 통과할 때는 소음이 심하고 역방향 좌석에 앉으면 현기증이 난다….”

고속철도가 개통된 지 보름여가 지났으나 승객들의 갖가지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들 문제점이 완벽하게 해결될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철도청은 공식적으론 “최선을 다해 오류를 수정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은근히 여론과 언론을 원망하는 눈치다.

철도청의 한 관계자는 “외국에선 30년 넘게 역방향 좌석이 운영됐으나 승객들의 불만이 전혀 없다. 한국인들은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또 일본과 프랑스에 비하면 한국 고속철도의 초기 정시 운행률은 매우 양호하다는 것이다.

철도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개통 초기 오류를 당연한 일로 생각해 솔직하게 공개했는데 언론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기사를 써 사실을 밝히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개인용 컴퓨터도 수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아무리 ‘준비된 상업운행’이라 할지라도 컴퓨터 네트워크덩어리인 거대한 고속철에 문제가 없을 리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노고를 몰라준다’며 언론을 원망하는 철도청의 자세가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고속철 관련 자료를 요청받은 철도청의 한 담당자는 “요즘 같은 지옥이 없다”며 “미안하지만 자료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속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는 자료는 공개하지 말라는 것이 내부 방침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는 비판의 소지는 사전에 차단하고 ‘좋은 소리’만 듣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태도는 분명 문제다. 모두가 알다시피 고속철은 시험 운행 과정에서 발견된 오류를 수정하지 못한 채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따라서 고속철의 오류 발생 원인과 그 수정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고속철도와 철도청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나성엽 사회1부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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