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흔 고령에 속담대사전 CD롬 펴낸 송재선옹

  • 입력 2002년 3월 13일 18시 07분


《“‘늙을수록 자식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까워진다’는 속담은 돈이 있어야 노인이 돼서도 대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평양 얼굴, 강원도 살결, 서울 말씨’가 진정한 미인의 기준이었고, 정말 나쁜 놈을 빗대서는 ‘제 어미 붙고(성관계) 담양(예전의 귀양지) 갈 놈’이라 했지요.” 속담 전문가인 송재선(宋在璇·90)옹. 그가 최근 발표한 ‘한국 속담대사전’(제작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서울 시스템) CD롬에는 걸죽한 육두문자부터 삶의 교훈이 담긴 속담 6만여개가 담겨있다. 이 CD롬은 그가 50여년간 모은 ‘한국 속담의 역사’로 국내 최대규모다. 》

◆ 취미로 모은 속담이 평생 직업으로

“예전부터 속담을 좋아했어요. 이름과 한글을 빼앗겼던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민족문화유산을 남기자’는 생각에서 해방직후부터 소멸해가는 속담을 모으기 시작했죠.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4000여개의 속담을 모았으나 전쟁통에 자료를 모두 잃어버렸어요. 휴전후 다시 자료를 모았지만 속담을 알고 있던 세대들이 줄어드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송옹은 해방 직후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전에서 벽돌 도자기 관련 회사를 4∼5개나 경영할 정도로 부유했지만 한국전쟁으로 회사가 모두 망했다. 하지만 그는 도자기나 벽돌 관련 자문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속담 모으는 일을 계속했다.

◆ 노인들과 말벗 하며 속담 자료 입수

그는 속담을 찾기 위해 서울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노인정 등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모인 곳을 발이 닳토록 돌아다녔다. 하지만 노인들은 “속담 모으는 사람인데 좀 알려달라”고 말하면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결국 그는 “우리 심심한데 옛날 얘기나 하자”며 먼저 재미있는 얘기를 풀어놓았다. 또 빵과 우유를 건네는 물량 작전 등을 펼쳐 노인들로부터 속담을 몇 개씩 모으기도 했다. 전남 곡성 출신의 한 노인을 만나서는 ‘갈 때는 험해서 울고 올 때는 동네의 후덕한 인심 때문에 우는 고향’이라고 얘기 한 뒤 500여개의 속담을 전달받기도 했다.

이렇게 30여년간 모은 속담 2만5700여개로 1983년 처음으로 ‘우리말 속담 큰 사전’(서문당)을 냈다. 그는 ‘무거운 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심경이었지만 한편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남북이 갈렸는데 ‘반쪽’만 해결한 것 같았기 때문.

문민정부가 들어서 국가보안법이 완화되자 그는 재일교포와 중국 옌벤(延邊)대학 도서관 등에 수소문해 속담 자료를 얻었다. 이북5도청 산하 북한 고향 소식을 전하는 100여권의 ‘군지(郡誌)’에 나온 속담도 찾아냈다.

또 ‘우리말…’ 발표 당시 미풍양속을 고려해 생략했던 상말 속담을 책으로 내기로 결정, 1993년 ‘상말 속담사전’(동문선)을 발간했다. 이 책은 속담 관련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1만6000부가 넘게 팔렸다.

◆ 속담 작업 끝내자 옹기 전문서적 준비

98년까지 ‘여성’ ‘동물’ ‘주색잡기’ ‘돈’ ‘음식’ 등 속담 사전 6종을 더 출간한 그는 그동안 발간한 책들을 종합한 ‘대사전’을 내야겠다고 결심한다. 3년4개월 동안 수작업으로 분류한 원고만 해도 6만9000여장에 이른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가물거리고 손이 떨리지만 몸이 움직이는 한 내가 아는 것을 글로 옮겨놓고 싶어요. 속담은 마무리했고 과거에 눈여겨 보았던 것을 마지막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송 옹이 말하는 마지막 작업은 ‘옹기’ 관련 서적 발간. 청자 백자와 관련한 책은 많이 나왔지만 ‘서민적인’ 옹기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올 연말까지 200여가지에 이르는 옹기의 사진과 용도를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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