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검찰, 어디로 갔나”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8시 33분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펴면서 전국의 승려를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했다. 이 명령에 따라 지방의 한 포졸이 승려를 잡아 서울로 압송하고 있었다. 끌려가던 승려가 장삼 주머니에서 금붙이를 꺼내 보이며 “내가 감옥에 갇히면 이것이 모두 쓸모 없게 되니 술이나 마시자”고 포졸에게 제안했다.

포졸과 승려는 주막에 들러 술을 퍼마시고 대취했다. 주막을 떠나 다시 길을 가던 승려가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자고 했다. 술에 취한 포졸은 나무 그늘 밑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 사이 승려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포졸의 머리를 빡빡 깎은 뒤 자신의 장삼을 벗어 포졸에게 입히고 달아났다.

해가 질 무렵 선선한 바람에 잠을 깬 포졸. 그는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어, 승려는 여기 있는데 포졸은 어디 갔지?”

검찰총장 탄핵안 국회 표결을 앞둔 17일 국회의사당에는 검찰 관계자들이 여러 명 나타났다. 주로 대전지검 관계자들과 대전지역 출신의 검찰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왜 국회에 갔을까. 스스로 원해서 간 것일까, 아니면 누가 보내서 간 것일까. 보냈다면 누가 왜 보냈을까.

그들 입장에서 야당 주장이 아무리 부당하고 검찰 형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검사들이 꼭 정치 마당에 드나들어야 했을까. 예전에는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수양산에서는 풀조차 뜯어먹지 않겠다”던 검사들이 꽤 많았는데….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란 사람이 대부분의 검사들 아니던가. 탄핵 소추는 일단 모면했다고 하지만 부끄러운 모습으로 비쳐진 검찰. 승려로 변해버린 포졸의 모습에서 우리는 본분에서 일탈한 사람의 정체성 상실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간 검사들의 모습에서 많은 시민들은 변해버린 포졸의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본격적인 공직 사정(司正)을 앞두고 검찰의 정체성 찾기가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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