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10월 26일 19시 0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프랑스 문부성에서 근무하다가 79년 북한 공작원으로 몰리는 바람에 21년 동안이나 고국 땅을 밟지 못했던 이유진(李侑鎭·61)씨는 26일 전화통화에서 정부의 입국허가가 나왔다는 말에 목이 메는 듯 했다.
이씨는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파리 무역관 부관장이었던 한영길씨의 프랑스 망명을 도왔다가 정부에 의해 ‘북한 공작원’ 혐의를 받았다. 대학 후배이기도 했던 한씨를 파리 주재 북한통상대표부로 납치하려 했다는 것.
파리 시민권자로 평양이 고향인 이씨는 81년 다시 북한의 고향방문 초청에 응하면서 결정적으로 정부의 눈 밖에 났다. 그는 “67년 동백림사건 구속자 선처와 80년 김대중 구명운동 등 반정부 운동에 앞장선 것도 정부로서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씨는 “79년의 ‘한영길 사건’과 81년 방북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된 96년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수십 차례 귀국신청을 했다”며 “그때마다 정부는 ‘방북 당시 활동에 대한 소명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기본입장을 뒤집고 조건없이 이씨의 귀국을 허락한 데는 프랑스 상원 부의장과 평화통일자문회의 김민하(金玟河·전 중앙대총장)수석부의장의 노력이 컸다. 이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고 정부 당국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씨는 “귀국을 도와준 교민사회와 프랑스 정부, 그리고 국내 언론에 감사한다”며 “21년간 ‘그리운 조국’을 바라보며 겪은 ‘냉전의 경험’을 12월말 자서전으로 써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