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화백 미수展 휠체어탄채 작품 둘러봐

  • 입력 2000년 7월 31일 19시 27분


5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88)화백이 31일 휠체어에 탄 채 자신의 미수전(米壽展)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현대를 찾은 것은 우리 미술사의 가장 극적인 ‘퍼포먼스’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노대가(老大家)의 감동적인 이벤트였다.

1996년 5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후소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투병생활을 계속해 온 운보는 주위의 만류로 이달 초 열린 미수전 개막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며 14일 이후에는 상태가 더욱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일에도 전시장을 찾을 계획이었으나 의료진의 만류로 무산됐다.

오전 11시40분 앰뷸런스편으로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 도착한 운보는 대기하고 있던 보도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전시장에 들어섰다.

옥색 모시 한복에 왕골 베레모, 그리고 자신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고무신에 빨간 양말’ 차림의 운보는 감회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이따금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지하 1층 전시실에 걸려 있는 자신의 친동생인 북한의 공훈화가 김기만화백의 ‘홍매(紅梅)’를 오랫동안 지켜봐 주위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또 바로 옆에서 상영되고 있는 자신의 건강하던 시절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전시장에 있던 100여명의 관람객은 거장의 ‘실존’을 감격에 겨운 모습으로 지켜보며 그를 따라 다녔다. 이들의 열렬한 환대에 고무된 운보는 어린이들을 자신의 주위로 불러 기념촬영을 하는 등 ‘팬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30여분간 전시장을 둘러본 운보는 전시회를 마련한 갤러리현대 박명자대표와 애제자 심경자교수(세종대 회화과)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수화 등으로 “최고다. 정말 애 많이 썼다.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는 인사를 건넨 뒤 다시 앰뷸런스에 올랐다. 주변에 모여 있던 관람객과 보도진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운보의 ‘미술관 나들이’를 힘찬 박수로 전송했다.

<오명철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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