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이것만은]이종석/적대감부터 걷어내자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33분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욕심이나 기대가 과(過)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분단 55년 만에 처음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대결과 반목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꾸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화공존으로 가는 고비▼

그러나 오늘의 적대적 남북관계가 평화공존으로 전환되고, 나아가 통일실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단계와 과정이 남아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 과정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한 단계를 진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을 맞이해 우리에게는 ‘우리가 소망하는 것’과 현 단계에서 ‘남과 북이 합의 가능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바로 여기서 우리에게 던져지는 과제가 적대성 해소다.

흔히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을 갈라놓은 이념과 가치를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해 이질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속박해온 분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질화 극복 이전에 그 토대가 되는 적대성 해소가 더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분단은 ‘지리적 분리’와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을 지닌 두 공동체의 ‘분열적 존립’ 정도로 이해되지만 실은 남과 북이 상대방에 대해 지니는 ‘적대성’이라는 요소를 하나 더 안고 있다. 분단이 우리에게 항상 위협적 존재로 다가오는 직접적 이유는 바로 이 적대성 때문이다.

이런 적대성의 해소 없이는 평화정착도, 통일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기치도 중요하나 그에 앞서 남북주민의 의식 문화 제도 속에 뿌리내린 적대성의 실체를 해소하려는 구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회담에서 남북간 적대성을 완화할 수 있는 실질적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뿐만 아니라 정치군사분야의 적대성 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합의를 시도해 볼 만한 의제들을 제시해 본다.

첫째, 남북정상이 적대성의 확대 재생산을 막기 위한 조치들에 합의했으면 한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상호비방과 분쟁 방지조치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상호비방 중지를 재확인하고 내정불간섭을 공동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휴전선의 선전간판과 확성기를 동시에 철거한다면 그 의미는 클 것이다. 남북간 문제들을 직접, 신속, 정확히 처리하기 위해 두 정상간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고 우발적 무력충돌과 확대를 막기 위한 군사직통전화를 설치했으면 한다.

둘째, 남북이 일부 영역에서라도 적대성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작업에 합의했으면 한다. 군사긴장의 상징인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전환하기 위한 합의 같은 것이 필요하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와 화해, 민족번영의 출발지로 바꾸기 위해 이곳에 평화관련 국제회의장을 만들거나 공동경제구역을 설치해 개발하는 것이다.

▼상설대화기구 구성 시급▼

마지막으로 지속적 대화만이 상호불신과 의혹의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정상회담 이후 사안별로 남북간 실무대화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실무대화기구들을 총괄조정하고 새로운 문제들을 협의 처리하는 고위급 상설대화기구를 만든다면 적대성 해소에 획기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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