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이것만은]조경철/끊긴 '핏줄의 恨' 풀어주길

  • 입력 2000년 5월 28일 19시 50분


1945년 8월15일 광복의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조국이 분단된 지 55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분단을 넘어 동족상잔의 깊은 상처까지 안았던 남북이 이번에 정상회담을 갖게 된데 대해 국민 모두 기대감에 부풀어 있지만 특히 실향민의 기대는 더 크다.

이북에 고향을 두고 남에서 살고 있는 실향민은 8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눈은 늘 휴전선너머 북녘땅에 머물러 있다. 몇십년 동안 편지 한번 주고받지 못한 친족들이며 조상들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고향과 손때가 묻은 집이 그립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요즘엔 꿈에서나 그리던 고향땅을 다시 가볼 수 있게 될 것 같은 설렘에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다.

정부가 남북간의 문호를 연 것은 불과 11년 전인 89년이었다. 바로 남북 교류협력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는 주로 경제적 문제에 국한된 극히 제한된 사람에게만 해당된 일이었다. 이산가족들의 만남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북측이 이를 원치 않았던 탓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꾸준히 만나왔다. 올 3월까지 북한 땅을 밟은 사람은 줄잡아 1만2000여명이나 된다고 들었다. 별도로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람은 2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남북간에 물자가 오간 것도 89년의 1900만달러에서 97년엔 3억달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싸우던 와중에도 남북은 그동안 꾸준히 가까워졌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남북은 둘이지만 늘 하나가 아니었던가.

이처럼 남북간에 오고감이 많아진 것이 이번에 양측이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한 밑거름이 된 것은 아닐까. 물론 북쪽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몹시도 어렵다보니 밉든 곱든 형제인 남쪽의 도움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따지고 보니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도 어느새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다. 환갑잔치를 치를 나이인 것이다. 우리네 보통사람들도 환갑잔치를 성대히 치르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총정리한다는 뜻에서다. 김위원장도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질곡을 풀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을 것이라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것이 정상회담 합의로 나타났다고….

다행히 나는 작년 11월 죽기 전에 다시 가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평양에 가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보았다. 일주일 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52년 만에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도 만났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50년 동안 가슴에 맺혔던 눈물을 흘렸다. 핏줄간의 만남만큼 가슴을 적시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실향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정치얘기도 좋고 경제얘기도 좋지만 꼭 한 가지 빼놓지 말고 합의해 줄 것을 두손 모아 바라는 것이 있다. 어떤 형식이건 간에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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