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창간80돌에 부쳐]최정호/독자가 곧 신문의 하늘

  • 입력 2000년 3월 31일 22시 38분


선거는 고된 놀음이다. 그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정치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임기가 4, 5년으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에 비해 선거도 임기도 없는 언론인의 무한 권력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렇다. 신문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권력이다. 현대인의 삶에 구석구석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막강한 권력이다.

그러한 근대 신문은 근대 대의민주정치와 마찬가지로 다같이 ‘시민사회’의 소산이었다. 왕조사회의 신민(臣民)이 시민(부르주아) 사회의 시민(시티즌)이 되면서 왕권에 대한 민권,정권에 대한 언권의 미디어로서 신문은 탄생했다.

신문이 선거로 국민의 의사도 묻지 않고 임기도 없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닌 만큼이나 온전히 옳은 말도 아니다.

정치인이 4, 5년 만에 한번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는 선거를 치른다면 언론인은 1년 내내 날이면 날마다 독자의 심판을 받는다. 유권자의 버림을 받은 정치인이 선거에서 패퇴하는 것처럼 독자의 버림을 받은 신문도 시장에서 패퇴한다. 한국 신문의 짧은 역사에도 독자들의 외면 속에 사라진 숱한 신문들의 제호를 우리는 떠올릴 수 있다. 언론의 세계에도 분명 묘지가 있고 거기에는 빈자리가 얼마든지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정치인의 생명이 유권자의 지지 위에 지탱되는 것처럼 신문은 독자의 사랑 속에서 수(壽)를 누릴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한 신문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수를 누린다는 것, 더욱이 국권상실, 동족전쟁, 군부의 거듭된 쿠데타와 장기독재체제 등 천하대란의 시대를 뚫고 80년의 수를 누려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기가 바뀌고 새 천년기가 열린 오늘 창간 80돌을 맞는 동아일보는 그를 축하하고 그 전통을 자랑할 넉넉한 명분이 있다.

동아일보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뿌리의 정통성에 있고 그를 수성하려는 승계의 노력에 있다고 여겨진다. 일제의 강점 아래서도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의 기치를 첫출발부터 분명히 밝히고 나섬으로써 동아일보는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유신’ 독재권력과 그 압력에 굴복한 자본의 광고보이콧이라는 이중의 탄압 속에서도 창간정신의 정통성을 수호함으로써 동아일보는 독자의 신뢰를 굳혔다. 그것이 동아일보의 생명력이다.

신문은 정치권력이 육성해 주는 것도 아니고, 광고자본이 보호해 주는 것도 아니다. 권력과 자본은 신문을 사랑하지 않고 두려워한다. 그것도 신문의 배후에 막대한 대중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등돌린 신문, 독자가 없는 신문은 권력도 자본도 경멸하고 무시한다. 독자가 곧 신문이 섬길 ‘하늘’이다.

멀티미디어의 인터넷시대, 이른바 ‘제3의 물결’이 굽이치는 21세기 정보화시대에서 전통적인 신문이 맞는 도전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장기적 전망에서 언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한 어느 고비에서도 그것으로 인해 전통적인 미디어가 사멸한 사례는 없다. 뉴미디어의 도전 앞에서 올드 미디어는 스스로를 차별화하여 더욱 자기 특성을 살려 온 것이 언론의 역사이다.

인터넷의 세계에서 낮도 밤도 없고 초침 분침만 있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볼수록 통제할 수 없는 무수한 정보의 파편에 전체적인 의미를 구축하고 잡다한 사실의 퇴적 속에서 나의 삶에 뜻있는 진실을 가려내 주는 신문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은 필경 시공을 초월한 사이버공간이 아니라 신문발행의 리듬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면서 낮 밤이 바뀌는 현실공간에서 하루 하루를 산다.

광통신의 뉴미디어 시대에 한갓 ‘사실’의 속보경쟁만 일삼는 뉴스(news)페이퍼의 역할은 줄어들어도 ‘진실’을 밝히고 ‘정론’을 펴는 뷰스(views)페이퍼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신문은 그저 변화의 기별만을 전달하는 파발(擺撥)꾼들이 아니라 그 변화에 대응할 방책을 공론화하는 언관(言官)들의 소임을 다해야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언론의 그같은 현대의, 그리고 미래의 대간(臺諫)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재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그들의 역량을 얼마나 활성화하느냐 하는 것이 21세기 신문의 내일을 좌우할 치명적인 관건이 되리라 본다.

그 점에서도 동아일보는 ‘온고지신’할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니고 있다. 80년전 인촌(仁村)이 신문을 창간할 때 그곳은 곧 민족엘리트들의 집결소 같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동아일보를 독자들은 사랑하고 신뢰했던 것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