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가짜 미술품과의 전쟁

  • 입력 1999년 7월 8일 19시 17분


국내 미술품 수집붐은 우리 경제성장과 맞물려 있다. 특히 80년대초에 이르면 웬만한 부잣집에는 청전 이상범화백 같은 저명화가의 그림이 한점씩 걸려 있을 정도로 확산된다. 미술품 값도 뛰기 시작했다. 수량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고미술품은 상승폭이 더욱 컸다. 투기조짐마저 있었다. 가짜미술품 시비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집가 대부분은 가짜 판별능력이 없다. 미술품 진위를 가리는 감식안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탓이다. 그래서 고미술업계 종사자들은 누구나 한번쯤 가짜를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고 한다. ‘완벽한 가짜’만 만들 수 있다면 단번에 수천만원, 수억원의 거액을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고서화 위조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생존 작가도 위조범들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현역 작가의 대표적인 위작사건은 91년 천경자화백의 ‘미인도’진위 논쟁이다. 천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자신의 그림이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불거졌으나 결국 ‘진실’을 가리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당시 미술전문가들의 ‘여론’은 진품임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국립현대미술관측도 진품이라는 입장에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최근 적발된 고서화 위조사건 수사과정에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왔다. 용의자 한명이 당시 문제가 된 그림을 자신이 위조했다고 자백했기 때문이다.

▽외국에도 가짜 미술품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측의 처리방식이다. 91년 천화백이 가짜주장을 했을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측은 몇번의 감정을 통해 진품이라는 입장만을 거듭 내세웠을 뿐 진위확인에 가장 중요한 작가의 증언은 외면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의 진위여부는 여전히 베일에 싸이게 됐을뿐더러 미술품 감정에 대한 불신만 증폭된 상태다. 새로운 자백이 나온 이상 진실을 밝히기 위한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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