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직후의 정국에서 민족적 지도자로 활약했던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의 유품전을 돌아보면서 그 유품들에 배어 있는 가르침들을 특히 오늘날의 국가적 위기와 관련해 새롭게 되새길 수 있었다.
첫째가 물산장려운동의 가르침이다. 1920년대에 이르러 일제의 상품들이 마침내 식민지 조선의 시장들을 휩쓸게 되면서 그나마 가냘프게 부지하던 조선의 자본과 기업은 일제에 압도당하게 됐다. 이 시점에 고하는 동아일보를 비롯해 민족진영의 여러지도자들과 함께 국산품 애용운동인 물산장려운동을 폈던 것이다.
이것은 1차적으로 경제적 자기방어 운동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조선민중의 독립심을 일깨우는 항일운동의 하나였다.
오늘날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아래 놓였고 그리하여 경제주권을 제약 당하고 말았다. 이것을 두고 국민들은 쉬운 말로 우리나라가 IMF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개탄하고 있다. 이러한 국난속에 우리 사회에서는 제2의 물산장려운동이 순수한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외국의 호화사치품 쓰기를 자제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국산품을 씀으로써 우선 외화의 해외유출을 막고 국내산업이 일어나도록 도와야겠다는 뜻이다.
둘째가 과학기술진흥운동의 가르침이다. 고하는 물산장려운동의 시기에 강연을 통해서나 사설을 통해서, 또는 기명(記名)의 논설을 통해서 과학기술을 일으켜야 한다고 계속해서 역설했다.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한 국민적 운동을 일으킬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독일의 세계적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가 이미 설파했듯이 19세기 동양이 서양에 굴복하게 된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과학기술의 낙후였다. 동양은 과학기술을 천시했기에 이것이 일어나지 못함으로써 경제와 군사력에 압도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IMF관리 시대를 맞이하게 된 배경에도 과학기술의 낙후성이 개입되어 있다. 정부와 기업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안정적으로 하지 못했기에 선진국의 과학기술에 눌려버렸고 그것이 상품경쟁에서 뒤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상품경쟁에서의 패배가 자연히 수출의 부진으로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과학기술의 진흥을 앞세워야 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해야 한다. IMF의 권유로 정부예산 기업예산을 줄인다고 해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려야겠다는 뜻이다.
셋째가 실용주의의 가르침이다. 고하는 지나친 명분론의 폐해를 경계하고 실용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오늘날의 국난을 이겨내는 길 역시 실용주의가 아니겠는가.
넷째가 국제사회에 대한 협조의 가르침이다. 1945년12월에 한반도 신탁통치 조항에 반대하면서도 대국적인 차원에서 국제사회와 협조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오늘날의 IMF관리 시대를 맞이해 국민 여론 가운데 일부는 민족감정을 앞세워 배외주의적 연설을 쏟아놓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길은 IMF 그리고 IMF로 상징되는 서방 선진국들과의 성실한 협조일 것이다.
집안이 어려울 때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려울 때 훌륭한 재상을 생각한다는 옛말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큰 풍랑을 만난 오늘날 우리는 고하의 유품전을 통해 옛 민족지도자의 발자취와 가르침을 되새기게 된다.
김학준<인천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