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官治금융 언제까지

  • 입력 1997년 6월 6일 20시 17분


일부 국책 및 시중은행장 선임에 정부가 개입해 은행권이 반발하고 금융계가 혼란에 빠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치(官治)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났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정부가 뒤에서 은행인사를 좌우한다는 것인가. 은행인사에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것은 관치금융의 근원이다. 정부는 금융개혁에 역행하는 은행인사 개입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외압(外壓)인사나 관치금융의 폐해는 바로 눈앞의 한보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외부 입김으로 선임된 은행장들이 압력에 못견뎌 6조원 가까운 자금을 한보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은행을 부실화하고 나라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 아닌가. 지금도 한보사태로 수많은 기업이 고통받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부담을 국민이 져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진행중인 한보사태의 교훈을 외면하고 은행인사에 개입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은행인사 개입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의식이다. 이런 생각을 뜯어 고치지 않고는 관치금융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인사파문에서 보듯이 정부 고위당국자 몇명이 어느 은행장은 누가 되어야 하고 누구는 안된다는 식으로 인사에 개입해서는 금융자율화와 개혁은 백년이 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은행장 후보를 추천하고 선임하는 비상임이사회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스스로 이를 유명무실(有名無實)화하려 한다면 이사회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제도의 틀 안에서 자율과 책임이 최대한 보장되는 인사가 이뤄지도록 감시만 하면 된다. 시중은행은 물론 국책은행 인사도 개혁해야 한다. 정부가 대주주이기 때문에 국책은행장은 공무원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관련 부처의 인사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나 학연 지연에 의해 나눠먹기 식으로 이뤄져온 정부투자기관 인사 관행은 혁신해야 마땅하다. 유능한 공직자가 경영을 맡아 성과를 올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 이번 국책은행 인사와 관련해서도 금융계나 경제부처에서 비적임자가 이런저런 사유로 국책은행장에 거명되고 있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면 당장 철저한 검증절차를 밟아 시정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경기침체와 한보사태,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로 홍역을 앓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금융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혼란이 거듭되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정부의 은행인사 개입까지 겹쳐 금융계가 더욱 어수선해진다면 경제난국을 극복하는데 정부가 앞장서기는커녕 혼란을 가중시키는 격이 된다. 한보 부실대출 관련자를 문책한다는 등의 명분이 있을 수 있으나 은행인사에 자율과 투명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은행 인사개입은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는 시대착오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