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덕선]의사면허 관리할 기구 만들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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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선 고려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
안덕선 고려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
구한말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됐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우리의 경우 서양의학이 도입될 당시 과학적 지식 위주의 교육만이 전파됐을 뿐 서양의료가 갖는 역사적 문화적 자산, 윤리적 전통은 전수되지 못했다.

선진국선 면허기구서 행정처분

19세기 말 영국의 의사단체는 업무와 신분 규정, 경제적 보상을 위해 의사조합 성격의 의사회를 탄생시켰다. 의사의 품위를 손상시킬 수 있는 내용 및 비윤리적인 사안에 대한 자율적인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의학협회도 구축했다. 의학협회는 일종의 면허기구다. 일부 의사의 잘못으로 의사 집단 전체에 끼칠 수 있는 명예 손상과 신뢰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됐다.

동아시아 유교권을 중심으로 한 권위적인 사회의 전문직 제도는 전문가 집단의 자율 규제보다 정부가 국가권력을 행사해 ‘법’으로 규제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그러나 윤리는 예방적인 차원의 성격이 강한 반면, 법은 특정 사안에 대한 고소나 고발의 주체가 있어야 하며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주된 개념이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전문직이 전문가 개인과 단체에 대한 적절한 기준을 정해 놓고 자체적인 윤리성 강화 방안을 모색해 왔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집단주의적 사회는 전문직의 자율 규제를 매우 낯설게 받아들인다. 대표적인 게 면허제도다.

우리 사회는 국가가 전문직의 면허를 발부하고 정부가 관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영국 미국 등에서 주는 전문직 면허는 공공(public), 혹은 사회 전체가 부여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의사 면허만 해도 사회가 의사에게 의업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대신 의사는 사회에 윤리적이고 적법한 직무를 제공한다는 암묵적 계약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의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강남에서 시신을 유기한 의사 등 의사들의 비윤리적 행위가 도마에 오른 요즘 의사 윤리를 어떻게 하면 강화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선진국에서는 윤리적 사안에 대한 행정처분을 단체에 위임해 의사들 스스로 면허의 기본가치를 준수할 수 있도록 별도의 면허 관리 기구를 발달시켰다. 이 경우 정부는 공공적 성격의 민간기관 설립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정부 대표자를 이사로 파견하지만 기관의 실제 운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면허기구는 스스로 재원을 조달함으로써 재정 독립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등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국가들은 면허관리기구가 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대만은 아직 없다.

필자가 전문의 교육을 받았던 캐나다의 경우 의사면허를 받은 사람은 엄격한 자율 규제를 실시하는 주 면허기구에 매년 120만 원을 면허 등록비로 내야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면허기구는 의사 2만 명의 면허를 관리하기 위해 200명이 넘는 인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의사들이 납부한 등록비로만 운영해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면허기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전문의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적인 관리요원이다. 의사의 비윤리적 행위는 물론이고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만 사항까지 조사한다. 사안이 심각할 경우 벌금, 면허 정지, 면허 취소까지도 한다. 면허가 박탈될 경우 재시험을 봐서 의사 자격을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이후 의료 활동을 할 때 진료 시 감독관이 함께하는 등 엄격한 제재가 뒤따르게 된다.

불만사항 접수해 면허취소 처분도

의사뿐 아니다. 캐나다 퀘벡 주는 법에 명시된 55개 전문직종이 모두 자율 규제 단체를 설립하도록 하고 있고, 이에 따라 사회적 고용 효과도 높이고 있다. 선진국의 이런 엄격한 전문직 문화는 의료제도에 대한 사회의 불만이 있다 해도 의사 집단에 대한 신뢰는 두텁게 하는 근거가 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면허기구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
#시론#의사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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