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새벽편지]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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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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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
내 책상 앞에는 토성에서 찍은 지구 사진 한 장이 붙어 있다. 그 사진은 신문 1면에 머리기사로 난 토성 사진으로, 말하자면 ‘토성에서 본 지구’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은 지구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 토성을 찍은 사진인데, 일곱 개 토성의 고리 너머 머나먼 곳에 지구가 조그마하게 찍혀 있다. 그런데 그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마치 볼펜 똥을 콕 찍어놓은 것 같다. 지구가 잘 보이지 않을까 봐 편집자가 일부러 지구 주변에 네모 표시를 해놓고 그 안에 점으로 보이는 게 지구라는 설명까지 덧붙여 놓았다.

나는 그 사진을 처음 본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지구가 저렇게 작다면 우주는 얼마나 큰 것인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의 그 수많은 별 중에서 지구라는 작은 별, 그 지구에서도 아시아, 아시아에서도 대한민국, 그 속에서도 서울이라는 곳의 한 작은 아파트에 사는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런데 무엇을 더 얻고 소유하기 위해 욕심 가득 찬 마음으로 매일 전쟁을 치르듯 아옹다옹 살고 있는가.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한동안 가슴이 멍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우주비행사가 달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푸른 지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지구의 지평선 너머로 달이 보이는 게 아니라 달의 월평선 너머로 지구가 보여, 지구가 마치 지평선에 뜬 달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지구를 마냥 아름다운 존재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지구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것이지 좁쌀만 한 지구의 크기를 보여준 건 아니었다.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과 지구의 크기를 깨닫는다는 것은 확연히 다른 문제였다.

우주에 비하면 나는 티끌같은 존재

나는 토성 사진을 신문에 난 무수한 사진 중의 하나로 치부해버릴 수가 없었다. 정성껏 코팅해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붙여놓았다.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 고개만 들면 그 사진이 보인다.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지구는 얼마나 작고, 그 지구 속에 사는 나는 또 얼마나 작은가,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모든 걸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 사진을 더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광활한 몽골의 초원도, 그랜드캐니언의 웅장한 협곡의 위용도 볼펜 똥만 한 지구 속에 존재해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면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무엇보다도 그 사진은 고통의 근원인 내 욕망의 고리를 잘라버린다.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고통도 적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해준다.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귀환한 후 환경주의자나 생태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것은 우주의 크기를 직접 체험하면서 지구가 얼마나 작고 위태로운 존재인지 깨닫기 때문이다. 아마 내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인생을 지구라고 생각하고 우주의 크기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 결코 원하지 않은 슬픔이나 비극들은 아주 사소한 먼지와 같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나는 요즘 삶의 크고 작은 일들 때문에 낙담하고 좌절하는 가까운 벗들에게 우주의 크기를 한번 생각해 보라고 얘기하곤 한다. 넓은 우주 속에 떠도는 모래알보다 작은 지구, 거기에서 또 티끌보다 작은 나라에 살면서 마음 상한다고, 마음 상하고 절망에 빠진다고, 절망에 빠지는 내가 그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깊게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하곤 한다. 우주는 지구가 얼마나 작고, 그 지구 속에 사는 인간이 얼마나 작고, 그 인간이 이루는 삶 또한 얼마나 사소한가를 증명하는 존재라고 생각된다.

“사실 살아가는 사소한 일에 별로 관심이 안 가요.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왜 이 좁은 데서 서로 으르렁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국가 간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열 내는 사람은 이해가 잘 안 돼요.”

이 말은 국제적 명성을 떨친 우리나라 젊은 천문학자 이영욱 박사의 말이다. 나는 이 말에 크게 공감한다. 분단된 우리의 정치사회 곳곳에도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지구는 얼마나 작고, 지구에 사는 나는 또 얼마나 작은가.’

욕심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야지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인간의 마음속에 우주가 있다고 하지만 마음이 평화로워야 마음속에 우주를 담을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우주의 크기에 비해 먼지보다 작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광활한 우주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언젠가 먼 우주에서부터 내 방 문틈으로까지 흘러들어온 햇살 속의 먼지를 보자 나 자신이 그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햇살에게’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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