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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4월 16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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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행정학과 김행범 교수는 지난달 말 1학년 전공필수과목인 '행정학 원론1' 강의에서 1986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공공선택이론' 요약 논문을 번역하라는 과제물을 냈다.
경제학적 시각으로 정치행정 현상을 분석한 논문으로 갓 입문한 행정학도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 결정한 주제였다.
그러나 일주일 뒤 김 교수는 제자들의 리포트를 채점하려다 고민에 부딪혔다. 10여 명의 과제물이 학번과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이 똑같았다.
다른 리포트도 6명이 한 조를 이뤄 번역분량을 분담한 듯 순서만 다를 뿐 내용이 매한가지였다. 논문은 읽지도 않고 번역 프로그램에 의존한 과제물, 논문을 공유하는 인터넷사이트에서 번역문을 구입한 사례도 발견됐다. 김 교수가 4,5시간 동안 읽은 리포트 40여 편이 이런 식이었다.
채점할 의미를 못 느낀 김 교수는 제자들의 부정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김 교수가 1차로 표절 여부를 걸러낸 뒤 학과장과 동료 교수, 재학생이 참여하는 2차 심사를 거쳐 39명의 리포트를 '표절'로 결론 내렸다.
행정학과는 12일 수강생 110여 명 가운데 39명의 명단을 학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학생들에게는 학과장과 자신 명의로 경고장을 보냈다. 경고는 학사경고 등과 달리 제재조치가 없고 계도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
김 교수는 경고장에서 "진리를 학습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배워야 할 대학의 연구 활동에서 표절과 조작 등이 자행되는 것은 대학 전체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라며 "교수사회가 바로 서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해 공분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또 "타인의 결과물을 도용, 절취, 공모, 표절하는 행위가 자행되고 대학이 '진리의 학습장'이 아니라 '거짓의 연습장'이 되고 있는 게 개탄스럽다"고 꼬집었다.
경고장을 읽은 학생들은 김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내 "잘못인 줄 몰랐다" "경고장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일부 베끼기는 표절이 아닌 줄 알았는데 이번에 확실히 반성했다"며 사죄했다.
김 교수는 "까다로운 교수로 학생들에게 낙인찍혀도 대학에 첫발을 디딘 학생들에게 대학가에 만연한 부정행위와 표절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해 며칠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을 감안해 F학점 등의 불이익은 주지 않기로 했다.
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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