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를 이끌 감독들]'파란대문' 김기덕감독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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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란 대문'
영화 '파란 대문'
김기덕은 흥행 감독이 아니다. 연출작 세 편 모두 시쳇말로 죽을 쒔다. 평단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감독도 아니다. 아주 소수만이 그의 남다른 행보에 일말의 관심을 보일 뿐이다. 주목할 만한 데뷔작 ‘악어’(1996)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보다 훨씬 더 대중적 화법을 구사한 ‘야생동물보호구역’(1997)은 외면을 넘어 처절하게 무시되었다. 전에 누리지 못한 비평적 찬사를 얻는 데 성공한 출세작(?) ‘파란 대문’(1998)마저도 혹평을 비켜가진 못했다. “‘매춘부 여성론’을 인간 이해의 근간으로 삼은 한국 영화의 우울한 전형을 보여준다”(유지나)는 등의 이유로, 그 해 최악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가 강제규 장윤현 이광모 홍상수 허진호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리 영화를 이끌 5인의 감독’에 선정된 것은 ‘악어’ 이래 내심 그를 성원해온 필자에게도 뜻밖의 일이었다. 특히 드라마 구성 및 전개에서 드러나는 치명적 약점 내지 개성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는 소위 작가영화를 지향하지 않는다. 열린 형식이나 내러티브 실험 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가 원하는 건 분명히 대중 상업영화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대중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이야기의 설득력’과 ‘개연성’을 보란 듯이 무시한다. 자칫 어설퍼 보일 수 있는 생략과 강조를 주저하지 않고 감행한다. “영화는 장르에 따라 이미 작위적이다. 없지만 있을 수 있는 사실 이상의 상황 설정은 필수적이며 그것이 영화의 묘미일 수 있다”는 소신에서 비롯된 ‘삐딱함’이다. 필자에겐 감독 특유의 개성으로 비치지만, 그로 인해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균열은 결정적으로 영화의 평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에는 위의 흠들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빛나는 미덕들이 당당히 버티고 있다. 화가 출신답게 탁월한 색채감과 화면 구도, 거듭된 참패는 아랑곳없다는 듯 줄곧 저예산 영화만을 고집하는 흔치 않은 뚝심 등은 큰 덕목이다. 그러나 이 땅의 숱한 소모적 감독들이 넘볼 수 없는 으뜸 미덕은 등장인물의 성격화(characterization)이다.

창녀와 백수건달 등 밑바닥 인생을 사는 그의 영화 속 인물들에게선 여느 영화 주인공들에게서 흔한 매력을 찾을 수 없다. 공감하고 동정하기엔 왠지 거북스럽다. 그렇다고 그들을 증오하거나 거부할 수도 없다. 그들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때론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흔히 보는 평면적이고 죽은 캐릭터들이 아니라 관계망을 통해 변화하는, 살아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처럼 ‘초라한’(?) 인물들이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진정 놀라운 체험이다.

이는 물론 언제나 ‘갖지 못한 자’의 입장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려는 치열한 문제의식, 스스로 한없이 낮아지려고 애쓰는 그의 겸손한 태도 덕택에 가능하다.

김기덕. 그는 아직도 개혁을, 혁명을 꿈꾸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일까, 아니면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일까.

▼프로필▼

△60년생

△95년 ‘무단횡단’으로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공모 대상

△96년 데뷔작 ‘악어’ 연출

△97년 ‘야생동물보호구역’ 미술,각본,감독

△98년 ‘파란 대문’ 미술,각본,감독

△98년 ‘파란대문’으로 제1회 호주 누사영화제 ‘월드시네마’상 수상

전찬일(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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