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씨, 이럴땐?]장애인 놀림딛고 당당히 서길

  • 입력 1999년 5월 10일 12시 17분


▼편지▼

오래전 초등학교 입학식날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와 나는 부산하게 움직였습니다. 곱게 화장을 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너무 겁나고 싫었습니다.

설렘과 두려움 속에 입학식을 치른 뒤 며칠도 못 가 아이들은 ‘절름발이’라고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잔뜩 하늘이 찌푸린 어느 날. 서둘러 10여리 떨어진 학교로 향했지만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굵은 비가 내렸습니다.

수업 중 창 밖을 보니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렸고 나는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제발 수업이 끝나기 전에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겐 우산도 없었지만 있어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온 몸으로 비바람을 맞으며 교문을 나섰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느린 발걸음이 더욱 더뎌졌고 읍내를 막 들어설 때쯤 뒤에서 상급생들이 ‘절름발이’라고 합창하듯 외쳤습니다.

개미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인데 몇몇 아이들은 발로 물벼락을 치고 도망가곤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뒤에서 물벼락을 치고 도망가려는 한 아이에게 지팡이를 내리쳤습니다. 곧 싸움이 벌어졌지만 내 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신나게 두들겨맞으면서도 내가 살아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뻤습니다.

한참을 엉켜붙어 있는데 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어머니.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비가 오자 마중을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나와 싸우던 아이로부터 다시 안 놀리겠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감정을 추스르는 듯 뒤돌아서 어깨를 들썩이셨습니다.

어머니. 우리 그 때 참 많이 울었지요. 고통의 시간은 잊어버리고 웃고 살아요. 이젠 사회에서 당당히 홀로 서는 제 모습을 지켜봐주세요.

마음의 고향인 어머니를 사랑합니다.(경북에서 한 아들이)

▼답장▼

최근 미국의 한 고교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은 온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무서운10대들,‘왕따’ 문제 등이 화제에 올랐고 미국 전역에서는 학교마다 친구들을 왕따시키지 말자는 결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문제가 어디 미국만의 문제겠습니까.

나보다 약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어렵고 힘든 사람을 무시하고 놀리고 외롭게 만드는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심지어 유치원에서까지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려서부터 약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하는 부모의 가정교육이 정말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때문에 어린 시절 겪었던 아픔, 그리고 어머니의 슬픔에 제가 대신 고개 숙여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아픈 과거가 있기에 더욱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는, 그래서 당당히 홀로 설 수 있었다는데 박수를 보냅니다. 이 땅의 모든 장애를 가진 분들이 이런 아픔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두손모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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