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준의 재팬무비]오즈와 구로사와의 독특한 작업 스타일

  • 입력 2001년 1월 20일 16시 26분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감독의 영화들이 아트 선재 센터에서 상영됐습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개봉은 아니지만 오즈 감독의 영화가 극장에서 정식으로 상영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세월이 흐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감독 가운데 한 명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도쿄 이야기>(東京物語) <부초>(浮草)…, 일상에서 건져내는 보석같은 감동, 다다미 쇼트로 대표되는 특유의 형식미…. 오즈 야스지로를 설명할 말은 많지만 이미 영화 전문지 같은 데서 여러 번 나왔던 내용이라 굳이 한 말 또 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대신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한 분이 일본의 3대 감독으로 꼽히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교한 게 있거든요.

미조구치 겐지는 1898년 생으로 세 명 가운데 가장 연배가 위입니다. 오즈 야스지로보다 다섯 살이 위이고 구로사와 아키라보다는 열두 살이 위지요. 대표작은 <우게쓰 이야기>(雨月物語) <사이카쿠이치다이온나>(西鶴一代女)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게쓰 이야기>는 영국의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10년에 한 번씩 영화평론가와 감독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해서 선정하는 베스트 10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작품입니다.

미조구치와 오즈, 구로사와, 세 사람 다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미조구치 감독은 닛카쓰(日活) 영화사에서, 오즈 감독은 쇼치쿠(松竹) 영화사에서, 구로사와 감독은 PCL에서 경력을 시작했지요. 재미있는 것은 소속사가 어디였느냐가 아니라 작업 스타일입니다.

미조구치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상당 부분을 맡겨버리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이러이러한 세트가 필요해' 하고 말을 한 뒤 완전히 맡겨두었다가 나중에 '이러이러한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또는 '아주 좋아' 하는 식인 거지요.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은 의욕에 넘쳤다고 합니다. 하늘같은 거장 감독이 믿고 일을 맡기니 힘이 날 밖에요. 물론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말은 없었지만 촬영 현장이 얼어붙은 듯 경직돼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오즈 감독 현장은 그야말로 얼어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오즈 감독은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기는 스타일입니다. 들어보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일화 두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여배우가 커피를 타서 마시는 장면에서입니다. 여배우가 별 생각 없이 커피를 타고 마시려 하자 오즈 감독 하시는 말씀. "아니야, 지금 스푼을 세 바퀴 저었잖아, 그걸 네 바퀴 젓는 걸로 해." 세 바퀴나 네 바퀴나 뭐가 달라요, 하는 따위의 질문일랑은 해서도 안 되고 한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일단 네 바퀴다 그러면 무조건 네 바퀴를 저어야 됐던 거지요.

다른 일화는 더합니다. 조감독이 어느 날 오즈 감독의 집에 들렀답니다. 마침 오즈 감독은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주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배추였습니다. "배추를 기르세요?" 하고 물었더니 오즈 감독님 태연히 "음, 내일 촬영에 쓸 소품이야." 오즈 감독의 완벽주의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한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좀더 쾌활합니다. 미조구치 감독이건 오즈 감독이건 '감독은 외로운 보스'라는 생각이 강해서 스태프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구로사와 감독은 달랐다는군요. 매일 촬영이 끝나면 집으로 스태프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답니다. 덕분에 스태프들 음식까지 챙기느라 따님이 죽어났다고 합니다만 그만큼 스태프들과 격의 없이 지내려 했던 거지요.

그 때문일까요. 구로사와 팀이 촬영을 하는 현장은 얼마나 쾌활한지 심지어는 싸움도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야 이 녀석아, 세트를 이러이러하게 만들랬잖아!" "감독님, 다른 건 다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이것만은 제 말씀을 들어주십쇼. 이건 이렇게 가야 한다니깐요." 하는 식의 싸움 말입니다. 그렇게 싸운 뒤 감독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풀어지곤 했답니다. 감독이 스태프들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스태프들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명작이 만들어질 수밖에요. 자존심과 사명감,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닐까요.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66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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