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한정석의 TV꼬집기]TV속의 스피드 전쟁

입력 2000-08-28 15:55수정 2009-09-2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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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건 전쟁이다. TV화면에 펼쳐지는 눈부신 속도전.

버라이어티 쇼와 같이 젊은 층을 겨냥한 프로그램들은 한결같이 속도에 승부를 걸고 있다. 재미없는 부분, 늘어지는 부분은 용서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락 프로그램은 말을 아주 빨리하면서도 음절이 또박또박 끊어지는 출연자를 선호한다. 그래야만 편집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TV화면의 강력한 스피드는 시청자로 하여금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시청자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재미있는 지 없는 지 판단하지 못한다. 그의 손가락은 리모콘 채널에 닿아 있지만 보고 있는 화면의 전개가 빨라지게 되면 리모콘을 누르고자 하는 의사결정이 지연된다.

내용이 있든 없든, 말이 되든 안되든 이런 것 따위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평균 1분 30초안에 얼마만큼 많은 변화를 줄 수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층이 사용하는 인터넷 속도와도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하루 3시간이상 서핑하는 유저라면 TV가 전개하는 화면의 속도감이 싫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현재장면을 3초안에 이해했다면 그 이상의 길이는 지연(Waiting)에 속한다.

젊은 세대들이 TV보다는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전용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TV의 화면전개와 장면변화의 속도는 증가될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인터넷과는 달리 TV는 일방향으로만 정보가 제공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안에 다양한 패턴을 구사할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단 한명이라도 네티즌화된 시청자를 채널내에 붙잡아 둘 수있기 때문이다.

TV의 이러한 스타일변화는 일정부분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비판과 연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문화가 형식보다는 내용, 소재보다는 테마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맥락에서 TV속의 자막이 남발하는 이유도 어찌보면 단순한 시청률 경쟁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될 지도 모른다.

그것은 젊은 층에 어필하는 게임과 같은 멀티미디어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영상의 전개와 그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시시각각 알려주는 보조 텍스트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밋밋한 동영상만의 전개로는 더 이상 어필하기 어려워졌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TV화면은 더욱 분할되고 입체화되며 보조 텍스트의 활용은 더욱 치밀하게 전개될 것이다. 아울러 그 스피드 역시 더욱 빨라질 것이다. 현재 인기를 끄는 퀴즈프로그램들이 그러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한정석(PD.영화평론가) kalito@crez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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