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소리 없는 소리’ 마이너 밴드의 뭉클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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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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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꿈 향한 성장담 ‘벡’

‘벡’의 미덕은 겸허함이다. 어설펐던 풋사랑, 첫 앨범, 첫 연주의 기억을 가식 없이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사진 제공 도로시
‘벡’의 미덕은 겸허함이다. 어설펐던 풋사랑, 첫 앨범, 첫 연주의 기억을 가식 없이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사진 제공 도로시
혹시, 세상이 뻔해 보이나. 하루하루 새로울 것 없이 지루하기만 한가. 나 따위 있건 없건 세상은 잘만 돌아갈 것 같은가.

18일 개봉하는 ‘벡’(12세 이상 관람가)은 현실의 냉기에 퍼석하게 곱은 손을 잠시나마 따뜻이 감싸 녹여줄 손난로 같은 영화다. 철부지 시절의 소중했던 꿈을 나이 들어 다시 꺼내 곱씹는 일은 자칫 추레한 우울함을 부르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시절의 황홀했던 낭만은 다 철없는 착각이었다’고 쓴웃음 지으며 고백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그 착각에 묵직한 응원을 보낸다. 단발머리 소녀를 생각하며 굳은살 터진 손끝으로 기타줄을 누르던 기억이 있는 관객이라면, 망설일 것 없는 선택이다.

날마다 밴드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고등학생 고유키가 우연히 알게 된 기타리스트 류스케의 밴드 ‘벡’에 들어가 보컬리스트로서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다는 이야기. 어이없는 ‘구라’가 틀림없다. 특히 겨우 두어 달 맹연습만으로 프로와 팀을 이뤄 연주할 만한 기타 실력을 얻는다는 설정은 아무리 원작이 만화라지만 실소를 머금게 만든다.

이런 만화적 과장이 거부감 없이 귀엽게 여겨지는 것은 시종 차분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의 균형감 덕분이다. 두 명의 주인공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게중심을 주고받으며 신생 밴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닥칠 법한 사연을 이것저것 풀어낸다. 멤버들 간의 반목과 화해, 음악을 무시하고 얼굴로 승부하는 메이저 음반사의 횡포로 인한 좌절, 밴드에 젊음을 걸게 된 저마다의 사연, 거기에 사춘기의 풋사랑 로맨스까지. 뒤죽박죽 헝클어지기 딱 좋을 여러 에피소드를 리드미컬하게 꿰어냈다.

중반 이후 살짝 늘어질 뻔한 위기를 아슬아슬 넘기도록 돕는 것은 음악의 힘이다. 연출을 맡은 쓰쓰미 유키히코 감독은 2006년 ‘내일의 기억’에서 중심 소재인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을 사실적으로 냉정하게 보여주며 관객의 감동을 끌어냈던 인물이다. ‘벡’의 클라이맥스인 공연 장면에서 그는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천부의 노래실력을 막 깨달은 고유키의 목소리를 묵음(默音) 처리한 것. 콘서트 현장에서 청중이 경험하는 최고조의 희열이 ‘소리에 취해 소리를 잊는’ 몰아의 순간에 있음을 간파한 설정이다.

‘벡’은 걸작과는 거리가 멀다. 만듦새는 거칠고 이야기의 디테일은 드문드문 진부하다. 그러나 소박하게 담아낸 격려의 이야기가 영화 속 대사처럼 “절대로 메이저는 못 되겠지만, 뭉클한 울림을 전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영화 ‘벡’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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