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작은 정원 큰 행복]유럽에 간 중동의 노란장미, 형형색색 환상의 꽃으로

파스텔톤 꽃이야기

여러가지 파스텔톤 꽃들. 왼쪽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개발한 장미 품종 ‘앤티크 컬’. 그 다음은 모두 수입종으로 ‘쉴라’(백합)와 ‘캡틴 사파리’(칼라), ‘애벌렌치’(작약), ‘세바스티안 매스’(작약).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제공

우리는 유럽을 ‘장미의 고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는 원래 빨간색(분홍색 포함)과 하얀색 장미만 존재했습니다. 18세기의 어느 즈음, 중동과 서남아시아에서 노란색 장미가 발견됐습니다. 유럽인들은 열광했습니다. 곧 네덜란드와 프랑스인들이 노란 장미를 이용한 육종을 시작했지요. 그 결과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다양한 색상의 장미가 탄생했습니다(www.rosemagazine.com).

그런데 색이 다양해지면서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색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원색이 유행이었지만, 최근에는 파스텔톤 장미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파스텔톤의 인기에 대해 꽃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기호가 세련돼지면서 연한 색이 인기를 끌게 됐다고요. 국내 최고의 플로리스트 중 한 분인 방식 선생님께서는 “파스텔톤 꽃의 매력은 계절 및 장소에 상관없이 우아한 느낌을 주고, 어떤 색상과도 잘 어우러지는 데 있다”고 하시더군요.

○ 원색 꽃에서 파스텔톤 꽃으로

파스텔 색상 꽃의 유행은 화훼 선진국인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한데 그 역사가 그리 길지가 않습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김성태 박사님에 따르면 파스텔톤 장미가 네덜란드의 절화(장식용으로 가지째 자른 꽃) 시장에 본격 등장한 것이 불과 20여 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절화 시장에는 2000년대 중반에야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빨간 장미가 유통량의 80%를 차지했습니다.

국내에서 파스텔톤 꽃이 알려지기 시작한 데에는 유럽에서 공부한 플로리스트들과 고급 꽃을 이용하는 호텔 결혼식의 영향이 큽니다. 방식 선생님께서는 “파스텔톤 꽃은 흰색 웨딩드레스에 잘 어울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한편 파스텔톤 장미가 인기를 끌면서 다른 꽃에서도 파스텔톤 색상이 각광을 받게 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백합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칼라와 작약 등의 꽃에서도 상품화된 파스텔톤 품종이 등장했습니다.

○ 인상파 그림 같은 꽃

파란 파스텔톤의 수국

기자는 칼라와 작약 꽃을 직접 보기 위해 경기 과천시에 있는 우리화훼종묘를 찾았습니다. 칼라와 작약, 튤립, 백합 등 구근식물을 유럽에서 수입해 농가에 공급하고, 자체 품종도 개발하는 국내 유수의 화훼 종자 회사입니다.

재배실에 피어 있는 꽃 중 특히 칼라 꽃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보라색과 연한 노랑이 어우러진 ‘피카소’나 연한 주황빛의 ‘캡틴 사파리’ 품종의 칼라 꽃들은 마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원산인 작약 꽃도 무척 볼만했습니다. 어른 주먹보다 더 큰 작약 꽃을 보니 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꽃구경을 하다 보니 화훼강국들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동북아 원산인 작약이나 창포, 금낭화 모두 원예용 품종은 네덜란드에서 개량한 것이더군요. 이와 관련해 김재서 우리화훼종묘 사장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자생식물 수출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국 사정을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었답니다. “작약은 안동과 포천에서 캐 주시고, 창포는…”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당시 국산 작약 품종 하나가 네덜란드로 건너갔습니다. 품종 이름이 없어 번호만 매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품종에 ‘소르벳’이란 이름이 붙어 세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요. 어쨌든 네덜란드 같은 원예선진국들의 실력은 대단한 듯했습니다. 홑꽃이 피고 뿌리가 얕게 내리는 동북아산 작약을 개량해 비교적 단기간에 풍성한 겹꽃과 깊은 뿌리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냈다고 하더군요.

파스텔톤 꽃이 인기를 끌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많이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김미선 박사님(난초 전문)에 따르면 예전에는 품종개량 과정에서 흐릿한 색의 난초가 나오면 도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색이 예쁘기만 하면 상품화가 된다고 하네요.

파스텔톤 꽃이 점점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중화 초기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좀 비싼 편이지요. 15년 동안 꽃집을 경영해온 양미숙 씨에 따르면 파스텔톤 꽃은 원색 꽃보다 최소 1.5배 정도 더 비쌉니다. 그래도 예쁘기만 하다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되지 않을까요? 저도 이번 주말엔 파스텔톤 꽃다발이나 하나 사볼까 합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