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황금이삭’…와닿는 글을 읽어라

  • 입력 2004년 10월 15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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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이삭/안재성 지음/284쪽 9000원 삶이보이는창

신영복 교수(성공회대)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많은 이들이 깊게 감동받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대학 1학년 때 군대에 갔다 온 복학생 선배 여럿이 입을 모아 그 책이 좋다고 이야기해서 나도 그 책을 구해봤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와 닿는 말이 별로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갔다 와서 그 책을 다시 보았을 때, 그 책은 감동 그 자체였다. 어떻게 아무 느낌이 없던 책이, 몇 년 만에 이렇게 다르게 와 닿았을까.

이 일은 내가 ‘삶의 체험’이 세상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인상적인 계기였다. 신 교수가 오랜 감옥 생활에서 뽑아낸 말들을 이해하는 데는 세상 쓴맛을 제대로 맛본 체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 뼈저린 체험을 한 뒤에야 그 책은 비로소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었다.

학교에 너무 오랜 시간 묶여 있어서 다채로운 체험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현실 체험 이야기다.

많은 논술 학습서들을 보면 파병 찬성과 파병 반대에 대한 논쟁과 같이 맞서는 두 주장을 요약해놓고, 각자 알아서 결론을 내리라고 한다. 무난해 보이는 이 학습방법에는 맹점이 있다. 두 쪽 주장을 비슷한 분량으로 요약해놓은 자료 앞에서 선택은 어렵다. 결국 학생은 논리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한쪽을 선택하기 쉽다.

이것은 요약 정리한 책으로 공부할 때 생기는 일이다. 각각의 주장에 대해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글을 쓰면 그 글에는 힘이 실리기 어렵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생 체험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20세기 한반도가 겪은 역사 상황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인생 이야기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생생하다. 그들을 보며 우리는 사람이 자기 환경에서 선택하는 대응방식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알게 된다.

청년 윤상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뒤에 겪는 혼란과 고통, 그 뒤로 이어지는 참회의 삶을 보면 전쟁이 비참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죄를 지은 다음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다시 땅을 짚고 일어서는 모습에서는 인간의 위엄을 느끼게 된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 이채훈은 많은 이들이 바라는 돈을 얻는다. 하지만 돈을 얻고 나니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르고, 돈을 얻느라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라 괴로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세상이 어떻게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가 생각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한 인간이 어떻게 안식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인간이 과연 무엇을 좇고 무엇에 만족하는지를 성찰해보면, 세상에 자극받아 너무 커진 욕망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것이다.

송승훈 경기 광동고 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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