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났던 선조들⑥]변화하는 재일동포 사회

입력 1998-02-17 20:14수정 2009-09-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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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월드컵 본선진출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벌인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 그때의 열풍은 단순한 게임 차원을 넘은 민족적인 것이었다. 그 시간 재일동포 젊은 세대들은 어떤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을까. 교토(京都)한국학교 중3년에 재학중인 3세대 이진징(李眞澄)군은 “좋은 경기를 펼쳤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동포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한국을 응원했다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일본을 응원한 친구들도 있었어요. TV에서 자주 보아온 일본선수가 더 친근하다는 친구들도 있고요.” 동포사회가 변하고 있다. 3,4세대로 내려갈수록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월드컵 예선 한일전에 대한 천차만별의 인식들은 1세대들이 온갖 차별에 맞서 굳건히 유지해 온 ‘정체성’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외길을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오사카(大阪)시의 대표적인 동포밀집지역 이쿠노(生野)구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현덕훈(玄德薰·33)씨 가족. 95년 80세를 일기로 숨진 그의 선친은 14세때인 1925년 도일(渡日), 자물쇠공장 등을 하며 일가를 이뤄 ‘제주인보다 더 제주인다운’삶을 살아갔고 마이니치신문이 현씨 가족사를 시리즈로 다루기도 했다. 북송선을 탄 이복형까지 6남5녀를 두었으며 본명을 쓰는 것은 물론 한국식 제사를 치르고 형제와 친척들이 이웃해 산다. 오사카 한국교회 집사인 3세대 이한희(李漢喜·56·여)씨도 95세의 할머니와 76세의 어머니 딸 손자 등 5세대를 이루는 동안 가족이 아무도 귀화를 하지 않고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일본으로 귀화하는 것과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차원이다. 귀화는 마치 혼(魂)을 파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동포들이 몇세대를 거치면서도 이처럼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상의 생활현장에서는 민단과 조총련의 벽이 많이 허물어졌으며 최근 북한의 식량난과 황장엽(黃長燁)망명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조총련계 동포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그런 반면 적지 않은 동포들은 사업을 위해 취직을 위해 또는 결혼을 위해 귀화를 선택하거나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살고 있다. 특히 “어차피 일본에 정주(定住)할 것이라면 일본국적을 갖는 게 자녀들에게 유리하고 더이상 아이들에게까지 부담을 넘기고 싶지 않다”면서 자식을 위해 귀화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오사카 총영사관의 호적담당 영사실에서 만난 박영자(朴英子·29)씨. 교토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일본인 청년과의 결혼을 앞두고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영사관을 찾았다. 그는 “아버지는 한국인과 결혼했으면 하고 바랐지만 학교와 직장 등에서 일본인과 자주 만나다 보니 일본인과 결혼하게 됐다”면서 “이제 아이들 문제도 있고 해서 귀화를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동포끼리의 결혼은 줄어들고 ‘국제결혼(일본인과의 결혼)’이 늘고 있는 추세가 뚜렷하다. 96년말 현재 일본의 외국인 등록자 1백41만5천여명 중 한국인 등록자는 65만7천여명(전체의 46.4%). 95년말 66만6천여명에 비해 1.4%가 감소했는데 고령자의 사망 등 자연감소보다는 귀화자의 증가가 주된 요인이라는 게 영사관의 분석. 민단측에 따르면 귀화자는 88년 이후 꾸준히 증가, 95년 한해에만 1만3백여명에 달했으며 96년말 현재 총 20만4천6백여명으로 나타났다. 일본인과의 혼인비율도 90년 이후 매년 82.3%에 이르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많은 동포들이 한국인 내색을 하지않고 일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동포 밀집지역을 떠나는 경향도 있다. 민단 중앙본부의 정몽주(鄭夢周)사무부총장은 “오사카의 동포밀집지역에서 고베(神戶)의 고급주택지로 이사하는 동포들이 많다. 도쿄 근교에서 가죽공장 등을 하다 돈을 벌어 도쿄 시내의 주택가로 떠난다”고 설명했다. 동포사회는 이제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고국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듣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 주축을 이뤄가고 있다. 그런 젊은 세대들이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려면 민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뜻있는 동포들의 일치된 견해다. 일본내 한국학교는 오사카의 건국학교(백두학원) 오사카한국학교(금강학원) 도쿄한국학교 교토한국학교 등 4곳. 조총련계 학교(1백40개 학교, 63개 유치원)에 비해 현저히 적을 뿐만 아니라 정원도 다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동포 학생의 90% 이상이 일본학교에 다닌다는 것. 오사카를 중심으로 초중학교 일부에 민족학급이 운영되고 있지만 의무교육이 아닌 클럽 수준이라 한계가 많다. 도쿄한국학교의 경우 학생의 약 90%가 상사주재원 등의 자녀들로 민족학교로 보기 어렵다. 금강학교 건국학교는 일본정규학교로 인가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정원의 절반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개교 50주년을 맞은 교토한국학교. 대지 약 1만5천평에 훌륭한 시설의 교사(校舍)를 갖추고 있으나 학생수는 78명(중학교 55명, 고등학교 23명)에 불과하다. 고등학교 신입생을 모집중이나 정규학교가 아닌데다 인식도 좋지 않아 지원자가 거의 없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민족교육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사카 민단부단장을 지냈으며 교토한국학교의 사무장으로 있는 임정운(任正雲)씨는 “한국학교를 나왔을 때 고국에서 대학교 입학의 길을 넓게 터주든지 한국업체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든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교토한국학교도 그대로 놔둘 것이 아니라 어학전문대학, 문화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동포사회의 미래가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동포 3,4세대에서 일고 있는 ‘고국바로알기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회귀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본명을 쓰고 한국을 직접 방문한다. 교토민단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는 지영이(池榮二)씨는 부모 권유없이 교토한국학교를 나왔으며 한국을 10여차례 다녀갔다. 동포끼리 혼인을 맺어주기 위한 사업도 한다. 중요한 건 이들에 대한 관심. 그는 “고국을 방문해서 한국말도 모르느냐는 비난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났고 역시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또 한국외국어대에 유학한 안모군(26)은 “오히려 한국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민족의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해 나가면서 일본 현지에서도 적응해 나가야 하는 재일동포. 그들은 일면 두가지 모순된 과제를 떠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몇년전부터 재일동포들에게 참정권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는 있으나 현재로선 실현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교토한국교육원 김종렬(金鍾烈)원장은 “동포사회의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족혼을 끈질기게 지키려는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부족하다”면서 “무엇보다 자라나는 세대가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꾸준히 배워나갈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오사카·교토〓정용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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