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톡톡]가고 싶고 가기 싫고, 즐겁고 괴로운 명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3000만여 명이 이동하는 설 연휴.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기쁘지만 오히려 설 연휴가 힘든 분도 많습니다. 설 연휴를 맞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그래도 가자

 “고향이 대전인데 한 번에 못 가고 구간별로 기차표를 끊었어요.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KTX 표는 매진이지만 서울∼광명, 광명∼천안아산, 천안아산∼대전을 따로 검색하면 빈자리가 있거든요. 자리를 바꿔 앉아야 하는 게 번거롭지만 그래도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게 어디예요.”―양규식 씨(24·대학원생)

 “반려견 때문에 카풀로 귀성하기로 했죠. 기차나 버스를 타면 반려견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되는데 미리 양해를 구하면 카풀은 그런 걱정이 없거든요. 필요할 때마다 휴게소에도 들를 수 있고, 같은 고향 사람들과 수다 떨면서 즐겁게 갈 수 있는 게 장점이죠. 비용도 기차나 버스를 타는 것보다 덜 드는 편이에요.”―김혜리 씨(30·회사원)

 “설날 당일이 아내 출산 예정일이에요. 이번 설은 가지 말까 하다가 기왕이면 어르신들이랑 손자 태어난 거 함께 축하하면 더 뜻깊을 것 같아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아내는 이미 2주 전에 가서 출산을 준비 중이죠. 그런데 아내가 없는 2주 동안 저도 엄청 편해서 좋은 거예요. 이런 걸 윈윈이라고 하는 걸까요. 사주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는데 아이가 음력으로 1월 1일에 태어날지, 12월 31일에 태어날지 지금은 그게 더 신경이 쓰이네요.”―최종록 씨(27·회사원)

 “속초가 고향인데 작년 추석 때는 자가용으로 새벽 4시에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18시간 걸려 밤 10시에 도착했어요. 국도로 가다가 조금만 막힐 것 같으면 아래로 내려갔더니 충주까지 가게 되더라고요.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까지 가서 다시 동해안 타고 올라왔거든요. 올해도 차 끌고 가야 하는 데 이번에는 정체되더라도 그냥 고속도로로 갈 거예요.”―한성재 씨(27·회사원)
 
누군가에겐 더 힘든 명절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요. 시댁이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집안인데 아들을 못 낳다 보니 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추석에, 설에 왜 이리 명절이 빨리 돌아오는지…. 저는 명절이 정말 싫어요. 시집오기 전 친정에서 보낸 명절은 즐겁고 따뜻했는데….”―한모 씨(35·주부)

 “시댁에 내려가긴 하는데 걱정이 하나 있어요. 시아주버니 사정이 어려워서 돈을 빌려드렸는데 아직 못 받았거든요. 좀 오래됐지요.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서 즐거워야 하는데 돈 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 명절마다 스트레스예요. 이번 명절은 돈 이야기 없이 조용히 잘 넘어가면 좋겠어요.”―기모 씨(59·주부)

 “명절에 근무를 서다 보면 홀몸노인들의 고독사나 자살 신고로 출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보다 더 외로움을 크게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명절에 이런 신고를 받으면 평소보다 더 가슴이 아프죠.”―김유라 씨(27·마포소방서 소방사)

 “한국 설은 중국에서도 춘제라는 명절이에요. 고향에 계신 아버지와 동생이 많이 그립죠. 시댁에서 일도 해야 하고 고향이 멀기도 해서 화상전화로 가족들 얼굴 보는 걸로 만족하고 있어요. 저 같은 다문화가정 주부에게 한국 명절은 신기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고향 생각이 더 나는 기간이기도 해요.”―천징 씨(38·다문화가정 주부)

 “행정고시가 한 달밖에 안 남았어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이번 설에도 못 갈 것 같아요.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어머니께서 돈을 보내주셨어요. 올해는 꼭 합격해서 다음 설부턴 제 돈으로 부모님 선물을 사서 고향에 가고 싶어요.”―이윤수 씨(25·행정고시 준비생)
 
고향은 지금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온 마을이 난리입니다. 명절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전 재산을 걸고 축산업을 하는 농장주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자식들에게도 전화해서 이번 설에는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매년 겨울 AI가 심해 이 지역에선 설을 쇤 지도 오래됐네요.”―정남춘 씨(60·경남 양산시 상북면 AI방역초소 근무자)

 “옛날엔 명절 때만 되면 마을잔치도 하고 보름 전부터 굿판도 벌였어요. 하지만 요즘은 명절에도 썰렁하죠.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난 집이 많은 데다 바쁘다고 명절 몇 주 전에 와서 성묘만 지내는 집들도 있어 정작 명절에는 사람 보기가 힘드네요. 귀성객들이 온다고 해도 워낙 연로하신 분들만 계시다 보니 마을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요.”―박길환 씨(60·전남 장성군 진원리 고산마을 이장)

 “지난 추석 땐 휴가를 붙여 전남 해남과 여수로 여행 갔다가 고향 집에는 짧게 들렀어요. 이번 설에는 업무가 많아 여행은 못 하지만 추석엔 동해안 여행을 하는 길에 본가를 들를 예정이에요. 저처럼 명절에 차례만 지내고 여행 다니는 사람을 D턴족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줄여주려고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저도 좋은 추억 만들 수 있어 좋네요.”―이동욱 씨(35·전자회사 연구원)

 “명절마다 양가에 거짓말하고 아내와 여행을 다니는데 매번 이런저런 핑계를 찾기가 어렵네요. 쓸 만한 건 이미 다 써먹었고. 죄송하기는 하지만 아이가 생기기 전에 실컷 여행을 다니려고요. 대신 죄송한 마음에 엄청 비싼 선물을 보내 드리고는 있어요. 양가에서 이 사실을 알면 아마 평생 명절에 여행 다닐 수 없을 거예요.”―김모 씨(33·회사원)
 
이거 알면 좋아요

 “경북 상주로 귀성하시는 분들은 자전거박물관이나 국제승마장을 꼭 들러 보세요. 자전거박물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국제승마장에서는 20% 할인된 가격으로 승마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너무 바삐 귀경길에 오르기보단 고향 인근 관광지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가셨으면 좋겠어요.”―여근동 씨(48·경북도 관광진흥과 주무관)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받는 분들은 업체에 전화해 명절 연휴 동안 배달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좋습니다. 절도범들이 현관 앞에 쌓인 신문과 우유를 보고 빈집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절도를 막기 위해 필요한 분들에게는 창문을 열면 경보가 울리는 장치를 무료로 설치해주고 있습니다. 집 전화를 착신전환해 놓고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바로 받는 것도 빈집털이를 예방하는 방법이에요.”―한찬수 씨(58·서울 연희파출소 소장)

 “역귀성하시는 분들에겐 항공운임을 할인해 드리고 있습니다. 부산∼서울의 경우 성수기 기준 편도 8만100원에서 50% 이상 할인된 3만5100원에 제공하고 있어요. 기차표보다 2만 원 정도 싸고 시간도 2시간 절약할 수 있죠.”―박기령 씨(26·에어부산 경영지원팀 사원)

 “설 준비에 필요한 25개 품목을 조사해 보니 무, 버섯, 고기 같은 신선식품은 전통시장이 더 싼 걸로 나타났어요. 반면 햄과 같은 가공식품은 대형 마트가 더 싸게 팔고 있었어요. 가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전통시장에서만 장을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알뜰하게 명절 장을 보려면 한곳에서만 장을 보기보다는 신선식품은 전통시장에서, 가공식품은 대형 마트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마미영 씨(48·한국소비자원 서비스비교팀 팀장)
 
오피니언팀 종합·전우철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설날#명절#조류인플루엔자#경북 상주#자전거 박물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