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찬순]외교부 사고나게 돼 있다

  • 입력 2001년 11월 9일 18시 42분


중국당국의 한국인 처형사건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외교통상부가 영사업무를 전면 개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영사업무가 문제의 본질인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외교부의 당면 문제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외교관 몇 사람 징계한다고 해서, 그리고 총영사 몇 사람 더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개혁을 하지 않는 한 나라가 망신당하고 국민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게 될 실수와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외교부는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남들은 컴퓨터와 전자장비를 들고 외교무대를 뛰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소총을 들고 어슬렁거리는 형편이다. 그러다가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 꽁치어장문제, 그리고 며칠 전에는 중국당국의 한국인 처형문제로 주변 4강국에 골고루 ‘뺨’을 맞는 수모를 당했다.

▼재외공관 디지털化 부진▼

이번 한국인 처형사건은 우리 외교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처음에는 문제의 문서를 찾지 못했다가 다시 확인해 보니 문서 2건 중 한 건은 확인됐고 다른 한 건인 사형판결문은 팩스 수신 기록만 있지 문서 수신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외교부측의 변명은 무슨 코미디 대사처럼 들린다.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은 외교문서를 디지털 자료로 축적하고 있다. 각국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관들은 자료를 본국에 축적시켜 놓고 필요할 때 어디서나 컴퓨터를 활용한다. 일상의 업무지시와 보고는 대사관과 본부간의 비밀 전산 연락망을 통해 이뤄진다. 외교문서철은 골동품 신세가 됐고 우편물처럼 왔다갔다하던 외교행낭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는 문제를 일으킨 선양(瀋陽) 영사사무소처럼 아직도 대부분의 재외 공관이 전산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문서를 일일이 묶어두어야 하고 케케묵은 문서철을 뒤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중국 측이 보낸 문서를 못 찾아 ‘통보 받은 일 없다’고 딱 잡아떼다가 몇 시간 후 발견되자 ‘아이쿠 우리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숙이는 망신을 당한 것이다.

첨단장비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몸으로라도 때워야 한다. 그러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91년 1730명이던 외교통상부 정원은 1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1524명으로 줄었다. 예산도 현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97년의 경우 정부 전체예산의 0.73%였던 것이 올해는 0.6% 수준으로 낮아졌다. 반면 외교업무는 엄청나게 늘었다. 냉전 시대는 서방과 개발도상국 외교에만 매달리면 됐지만 지금은 동유럽권이 모두 우리의 외교권 안으로 들어 왔다. 정치 군사 안보문제뿐만 아니라 직접 연관이 없는 전 지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외교업무의 질, 양, 범위가 과거에 비할 바 아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외교관 개개인의 정예화는 더욱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현실은 어떤가. 외교부의 지역주의 연고주의는 현 정권 들어 더욱 극심해졌다. 어떤 장관은 여권의 인사요구를 들어 주지 않았다 해서 하루아침에 ‘낙마’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니 외교공무원들의 정예화가 이뤄지겠는가. 보신주의와 기회주의, 줄대기와 눈치보기가 판을 치고 외교조직의 사기와 응집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인력-조직 대수술해야▼

외교부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무엇보다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남북관계에만 외교력을 집중하다 보니 급변하는 국제무대의 외교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며 무조건 조직 축소의 ‘칼’만 들이댔다.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2000여명의 외교관을 증원했다. 일본은 수 차례의 정부 조직 축소작업에도 불구하고 외교관만 매년 수십명씩 늘려 총 외교관 수가 우리의 3배가 넘는 5000여명이다. 한국 외교부만 계속 쪼그라든 셈이다. 그 때문에 외교 기능이 현격히 저하되고 외교전략 부재와 외교력의 공동화 상태가 생긴 것이다.

이런 마당에 총영사 몇 명 더 늘려서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외교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전면 개혁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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