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티베트의 물고기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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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한국 언론인 7명을 ‘7일간의 티베트 기행’에 초청한 목적은 분명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니 가서 보라는 것이다. 티베트가 시짱(西藏)자치구가 된 지 40년 만에 얼마나 발전했는지, 중국 정부가 허울뿐인 자치로 티베트 민족을 억압하고 있는지 직접 살펴보고 얘기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달라이 라마로 상징되는 티베트 독립운동에 동조하는 듯한 서방 언론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노골적인 불만의 표출은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이며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는 ‘중화(中華)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둥위안후(董元虎·44)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국장은 “티베트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산소 부족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티베트의 모든 것이 그만큼 변화,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산소 부족’이야말로 외래인이 당장 부딪쳐야 하는 심각한 장애였다.

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薩)는 해발 3658m의 고원(高原) 도시. 한라산(1950m)의 두 배에 가까운 고도(高度)다. 라싸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도착한 첫날은 샤워도 하지 말고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호텔 방 안에는 고산병 증세에 먹는 물약과 알약이 그득했다. 증세가 심하면 산소통 신세를 져야 할 판이었다. 천천히 걷고 틈틈이 약을 먹으면서 한둘은 하루 만에, 두셋은 이틀 만에, 그리고 나머지는 사흘이 지나서야 산소 부족에 적응할 수 있었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통일적 다(多)민족 국가’로 한족(漢族)이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원칙은 ‘하나의 중국’. 소수민족의 자치 및 문화와 전통, 종교 활동 등은 허용하지만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짱자치구 문화청에서 만난 여성 티베트인 간부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불신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달라이 라마 체제는 수백 년 동안 5%의 승려와 귀족들이 95%의 티베트인을 노예처럼 부려 온 중세적 봉건제도였다. 왜 티베트인들이 다시 그 암흑의 시대로 돌아가려 하겠는가.”

달라이 라마는 500년 이상 티베트를 통치한 정치와 종교의 수장(首長)으로 ‘바다와 같은 지혜를 지닌 라마’라는 뜻이다. 현재 인도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제14대로 본명은 텐진 갸초. 1939년 네 살의 어린 나이로 달라이 라마에 즉위한 그는 중국의 티베트 강점(1950년)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봉기와 중국군의 무력진압 사태가 벌어진 1959년 인도로 망명했다.

그는 최근 한 대담에서 “티베트는 오랜 세월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모든 변화와 영향을 거부했다. 우리만이 유일하게 진리를 믿고 있고 고립 속에서도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고 토로했다. 티베트가 그 업보(業報)를 치르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그는 티베트의 독립보다 티베트 민족의 진정한 자유와 기본적 인권보장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티베트를 중국의 자치구역에서 평화구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티베트가 중국의 자치구가 된 1965년 이후 40년 동안 티베트의 국내총생산(GDP)은 70배 이상 늘어났다(2003년 1인당 GDP 830달러). 1994년 이후 10년 동안에는 매년 12%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지금 우리가 옳으냐, 달라이 라마가 옳으냐를 묻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발원해 중앙 티베트를 흐르는 야루창부(雅魯藏布) 강의 물고기가 즐거워서 뛰놀고 있는지, 고통 속에 헤엄치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티베트인들은 오늘도 ‘신성한 땅’ 라싸의 옛 궁전과 사원을 돌며 오체투지(五體投地·머리 위에서 합장을 해 가슴까지 내린 뒤 무릎을 꿇은 다음 몸을 땅에 붙이고 두 손을 앞으로 쭉 뻗는 동작)로 민중의 평안과 내세(來世)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옴마니밧메훔”(연꽃 속의 보석이여)!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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