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주교 “건학이념 위협에 안나설수 없었다”

  • 입력 2005년 12월 1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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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해성중고교와 성심여중고교 등 4개 학교로 구성된 해성학원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가톨릭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이병호(李炳浩·전주교구장·사진) 주교는 14일 “사학법 개정으로 천주교가 세운 학교들의 건학이념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주교는 “우리 사회가 여러 집단의 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천주교마저 이런 대열에 합류하는 것처럼 일반 국민의 눈에 비칠까봐 걱정스럽다”며 개정 사학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학의 건학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이사회에 끼어들면 어떤 논의도 할 수 없습니다. 정족수를 겨우 채우는 회의에서는 사외이사의 권한이 더욱 커질 텐데 이사회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죠.”

그는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면 천주교 학교들을 원래의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각 분야의 많은 지도자가 유명 사학 출신인 것을 예로 들면서 사학의 사회적 기여를 강조했다.

“미국 한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은 ‘너 자신을 위해 하지 말라’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사회봉사활동을 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합니다. 이렇게 길러진 학생들이 결국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지요.”

이 주교는 우리 사학들도 이상을 구현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며 “이번 개정 사립학교법안의 문제점은 교육의 주체를 주체로 인정하지 않아 사학들의 이런 노력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잘못 운영하면 평균인들만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며 국가의 획일주의적 교육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주교는 14일 발표된 천주교의 성명과 관련해 “천주교의 충정을 담기 위해 고민하느라 회의시간이 4시간 넘게 걸렸다”며 “그러나 28명이 참석해 논의하는 바람에 온전히 이를 담아내지는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앞으로 소규모 분과회의를 열어 더욱 진전된 방침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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