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난 이렇게 사고났다]

  • 입력 1999년 1월 17일 20시 17분


96년 겨울 나는 집사람과 아들을 태우고 강원 화천에서 군인생활을 하는 사촌동생을 찾았다. “이왕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 평화의 댐을 구경하고 가라”는 사촌의 말에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화천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사촌동생과 헤어진 나는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점점 속도를 높였다. 간혹 도로변에 잔설(殘雪)이 보이긴 했지만 도로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

30여분쯤 달렸을때 급한 커브길이 나왔다. 달려오던 힘대로 무심코 길을 돌아섰다. 그런데 갑자기 빙판길이 드러나는게 아닌가. 동시에 불과 4∼5m앞에서 거북이 운행을 하는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앞 차를 피하려다가는 강물로 미끄러질 판이었다. 식은 땀이 흘렀다.

앞 차와의 거리가 거의 붙었다고 느낀 순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에 발이 가고 차는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고 말았다. 집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꽝’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자동차가 한바퀴 요동을 치는 것 같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니 앞 유리는 거미줄같이 금이 간 채 내려앉아 있었고 차는 여기저기 심하게 찌그러져 차에서 내리려고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조수석의 아내는 심하게 다쳤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동차문을 뜯고 우리 가족을 구했다. 나중에 보니 나는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아내는 옆구리와 갈비뼈를 다쳤고 아들은 발가락이 골절돼 깁스를 해야 했다.

평화의 댐을 구경만 하지 않았더러도…. 조금만 천천히 달렸으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앞차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후 나는 겨울이 오면 결빙지역이 없나 세심하게 살피게 됐고 빙판길을 지날때는 심봉사 지팡이 두드리듯 더듬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박근엽(朴槿燁·45·강원 춘천시 퇴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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