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비스마르크式부시?

  • 입력 2005년 1월 5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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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로이센의 철혈(鐵血)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유럽사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기자에겐 다소 어리둥절한 ‘짝짓기’인데 요즘 미국의 지식인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해 11월 2일 미국 대선을 전후해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 화두(話頭)로 삼더니,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1·2월호는 아예 부시 2기 행정부의 ‘거시 전략(Grand Strategy)’을 비스마르크에 대입시키고 있다.

역시 예일대 역사학자인 존 개디스 교수가 ‘포린 어페어스’에서 던지는 질문은 사뭇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부시 대통령은 과연 비스마르크의 전범을 따를 수 있을까?’

신문사 서고(書庫)에서 비스마르크 전기를 꺼내들었다. 철과 혈, 그리고 뛰어난 외교술로 1871년 독일 통일의 위업을 이루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유럽지도를 만들었던 인물. 비스마르크를 21세기, 그것도 임박한 부시 2기의 시대로 불러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두 사람에게 닮은 점, 닮은 환경이 없진 않았다. 오늘날 미국이 ‘2개의 나라’로 분열돼 있다시피 한 것처럼 당시의 프로이센도 크게 보면 보수 개신교의 옛 프로이센과 자유주의적 가톨릭의 라인란트로 나뉘어 있었다.

세상이 따분해 젊은 시절 방황하다 신앙심 깊은 부인을 만나 ‘개과천선’한 것도 비슷하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도 그렇고….

“나는 제국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정색하는 모습도 닮은꼴이다.

기자와 역사학자의 차이일 것이다. 개디스 교수는 닮은꼴 찾기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 집권 1기의 키워드는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였다. 이라크 공격의 작전명도 그랬다. 비스마르크가 들고 나온 ‘철과 혈’도 당시 유럽인들에겐 충격과 공포였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의 비스마르크 2기는 달랐다. 충격과 공포만으로는 유럽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없었다. 비스마르크는 철과 혈 대신 ‘실리와 실용’ ‘외교와 중재’를 받아들였고, 그랬기에 비스마르크 2기 체제가 거의 반세기를 풍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 개디스 교수가 지난해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던데….’ ‘부시 대통령이 그때 비스마르크 2기의 세계경영 전략에 관심을 표시했다던데….’

부시 2기의 기조가 비스마르크 2기의 전범을 따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워낙 자신감에 차 있어 1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도 만만치 않다. 1월 말이나 2월 초쯤 발표될 그의 새해 연두교서엔 뭔가 실마리가 들어있을 것이다. 2001년 연두교서 때 그랬던 것처럼 ‘악의 축’이 되살아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2005년 1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어떤 의미에선 이제부터 집권 2기다. 그는 누구로부터, 어떤 역사를 듣고 있을까.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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