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DJ와 日천황의 ‘월드컵 同席’

  • 입력 2002년 7월 1일 19시 00분


지난달 30일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결승전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다름 아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이 나란히 앉아 함께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에는 국가원수가 없다.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 직접 정치에 간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정을 맡고 있는 수상의 정식 명칭은 ‘총리대신(大臣)’이다. ‘큰 신하’라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제하는 대신 실질적인 권한을 박탈했지만 아직도 천황은 ‘정신적인’ 국가원수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천황의 한국 방문을 한일 과거청산의 ‘완결편’으로 여겨왔다. 한국 국민 역시 천황의 사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국은 서울의 월드컵 개막식 때도 한국 방문을 조심스레 조율했으나 결국 천황 사촌인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가 대신 참석했다.

아키히토 천황 자신은 1998년 김 대통령 방일 때 “한반도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준 시기가 있었다”고 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간무(桓武) 천황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며 혈통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등 화해 제스처를 보여왔다.

이번 동석(同席)은 김 대통령 방일로 이뤄진 것이어서 그런지 매스컴의 별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게다가 한일간에는 아직도 역사문제 등 외교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월드컵 이전이나 이후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그러나 양 국민이 서로를 보는 눈은 상당히 달라졌다. 특히 일본인들은 한국의 저력을 새삼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4위에 그친 것을 ‘절묘한 결과’라고들 말한다. 한국이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진출했다면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소외감과 질시를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한일 관계에서도 ‘칼로 무자르듯’ 일방적인 승리만이 능사는 아닐성 싶다. 상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이후 양국이 현안을 풀어나가는데도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고 공생을 지향하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 대통령과 아키히토 천황의 ‘월드컵 동석’이 한일 공생의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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