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새 심장이 뛴다]<7>LG화학 전지사업본부 ESS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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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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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전기 냉장고에 보관하듯” 첨단 ESS 스위스에 첫 수출

3월 20일 대전 유성구 문지동 LG화학 대전기술연구원에서 ESS 프로젝트팀원들이 ESS 배터리의 충전·방전실험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민 차장, 김윤정 대리,
신진규 부장. LG화학 제공
3월 20일 대전 유성구 문지동 LG화학 대전기술연구원에서 ESS 프로젝트팀원들이 ESS 배터리의 충전·방전실험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민 차장, 김윤정 대리, 신진규 부장. LG화학 제공
지난겨울 중 가장 추운 1월이었다. 그리고 스위스였다. 알프스는 아름다웠지만 추위는 너무 매서웠다. 실외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는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와중에 컨테이너 난방장치마저 고장이 났다. ‘마지막 보루’였던 전기난로를 배터리가 얼지 않도록 기계장치 앞으로 옮겨놓았다. 오들오들 손발이 떨렸지만 사람은 뒷전이었다. 급강하한 온도 때문에 배터리나 연결장치에 문제라도 생기면 수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LG화학 전지사업본부 전력저장장치(ESS) 프로젝트팀의 박정민 차장(37)에게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취리히 인근 한 작은 마을의 컨테이너 속에서 그와 동료들은 ‘달콤한 봄’이 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 첫 판매 프로젝트 완수

LG화학은 2011년 11월 세계 3대 발전설비 회사인 스위스 ABB와 1메가와트(MW)급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했다. LG화학 ESS 배터리의 실질적인 세계무대 데뷔전이었다. ESS란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꺼내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을 말한다. LG화학은 리튬이온전지 분야의 기술력을 활용해 ESS 시장을 두드려 왔고, ABB가 첫 고객이었다.

박 차장 등 연구원 3명은 그해 12월 스위스로 날아갔다. 이듬해 2월까지 ESS 설치를 완료하고 시험운용까지 끝내는 게 임무였다. 며칠 동안은 한국에서 공수해 온 재료와 장비들의 포장을 뜯어야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ESS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컨테이너 1개에는 보통 1만 개가 넘는 셀(cell·배터리의 최소단위)이 들어간다.

ESS 시장은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지만 대부분 납축전지를 사용해 왔다. 납축전지는 부피가 크고 전력효율이 떨어지며 수명이 2년에 불과했다. LG화학의 리튬이온전지는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ABB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가정용 ESS 시장이 급성장하는 유럽에서 시장 진출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ESS 프로젝트팀의 신진규 부장(40)도 작업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스위스에 합류했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신 부장은 “기술력에 대해서는 자신 있었지만 첫 현장 투입이라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ABB 관계자가 함께한 수십 번의 테스트는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박 차장은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 판매하는 것이라 회사로선 의미가 큰 프로젝트였다”며 “그제야 ‘ESS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독일 IBC솔라에 납품할 가정용 ESS 장치(가로 66cm×세로 44cm×높이 60cm·6.3kWh). LG화학 제공
독일 IBC솔라에 납품할 가정용 ESS 장치(가로 66cm×세로 44cm×높이 60cm·6.3kWh). LG화학 제공
○ ESS 시장을 선점하라

LG화학은 자동차용 전기배터리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회사다. 지금 전기배터리 시장이 생각보다 활성화되지 못하면서 배터리사업도 주춤하고 있지만 기술력만큼은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연구개발(R&D) 인력들에게도 자동차용 배터리를 개발하는 팀은 소위 ‘잘나가는’ 부서다. 2010년 8월 자동차팀 내에 ESS용 배터리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든다고 했을 때 선뜻 손을 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박 차장이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평소 ESS의 시장성을 높이 평가했던 그는 회사가 ESS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지사에서 들어왔다. 그러고는 “우리가 개발한 전력장치가 아마 모든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주변 동료들을 설득했다.

처음 구성된 TF는 15명 정도였다. 이들은 LG전자, GS칼텍스, 한국전력, 포스코 등과 함께 제주도 ‘스마트 그리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역량을 키웠다. 공식적인 조직이 생긴 것은 지난해 1월이다. 현대차의 ‘아반떼 하이브리드’에 사용될 배터리를 개발한 신 부장 등이 합류하면서 전체 팀 구성원은 40명으로 확대됐다.

신 부장은 “대부분의 연구원이 자동차 배터리를 연구할 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6, 7년간 고생했다”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그걸 다시 반복하겠다고 나서기가 쉽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스위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고, 같은 해 6월에는 독일의 IBC솔라와 태양광발전용 ESS 사업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예비전력을 모아두는 ESS는 에너지 생산량이 불규칙한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분야에서 훌륭한 보완재가 될 수 있다. 독일은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5%까지 높일 계획인 만큼 LG화학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ESS 시장이다.

전 세계 ESS 시장 규모는 지난해 142억 달러에서 2020년 536억 달러, 2030년 13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원래 대전기술연구원 배터리연구소 소속이던 ESS 프로젝트팀을 본사 전지사업본부 직속으로 옮겼다. 실질적인 사업화 역할까지 맡긴 것이다. 구성원들도 한껏 고무돼 있다. 회로설계를 맡고 있는 김윤정 대리(31·여)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세계에서 첫 번째라는 사실이 가장 보람이다”라고 말했다. 배터리 패키징을 연구하는 이범현 과장(38)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무한한 영광”이라고 했다.

대전=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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